재미 중국인들 “지금 침묵하는 사람도 언젠가 목소리를 낼 것”
“전 세계 저항 움직임에 감명…한 달 전만 해도 상상 못한 일”
미국 뉴저지주 저지시티에 사는 위야오씨(37)는 남편 황민혁씨(41)와 함께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주뉴욕 중국 총영사관 앞을 찾았다. 재미 중국인들의 제로 코로나 반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에서 태어나 열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 온 위씨가 시위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씨는 “중국과 전 세계에서 열린 저항 움직임에 깊이 감명받았다”며 “중국에 있는 사람들이 경찰에 체포되거나 구타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우리는 침묵에 대체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꽃, 촛불, 백지 또는 자신만의 구호가 적힌 A4 용지를 들고나온 시민들은 차례차례 바닥에 꽃을 놓으며 신장위구르의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들을 추도했다. 열띤 발언이 이어졌다. 중국에 있는 가족의 안전을 우려하거나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 있어 가면을 쓰고 나온 사람도 있었지만 연단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실명을 밝혔다.
황씨는 “자신은 위구르인이라고 밝힌 한 연사가 ‘이전에 한족들에게 우리가 겪는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 지금은 믿느냐’고 묻자 모두 큰소리로 ‘믿는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해외 거주 중국인으로서 시위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한 참석자는 “아무도 듣지 않는데 여기서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친구도 있지만, 우루무치에서 화재로 죽은 사람들이 말할 수 있겠나? 가난으로 기본생활도 위협받는 사람들이 말할 수 있나?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여기서 그들을 위해 말하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가 군중을 향해 “여러분은 중국으로 돌아가서도 항의 시위에 참석하겠느냐”고 묻자 “그렇다”는 응답이 나왔다.
당국의 방역정책과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황씨가 제공한 현장 영상에서 한 남성은 “우리는 진짜 과학을 원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한 명이 과학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한다. 지금 우리는 당장 일자리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생존 자체도 문제가 됐다”고 열변을 토했다. 시위대는 함께 “시진핑은 물러나라” “자유 만세” “민주 만세” 등의 구호를 외쳤다.
위씨는 시위 현장에서 들은 공감 가는 연설로 “지금까지 여러 시위에 나가봤지만 다 미국인들의 시위였다. 내가 중국인인 것이 부끄러웠는데 이 자리에서 드디어 제가 중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꼽았다.
그는 “한 달 전만 해도 중국인들이 ‘시진핑은 물러나라’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 저항을 독려하는 것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쓰퉁차오 현수막 시위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줬다”며 “지금 침묵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게 되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AP통신은 이날 뉴욕 중국 영사관 앞 시위에 약 400명이 참석했으며 시카고의 중국 영사관, 하버드대 등에서도 중국 유학생 등이 중심이 된 시위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서울, 도쿄 등지에서도 중국인들의 연대 집회가 열렸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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