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적 운송거부”라고 표현한 정부…정작 ‘불법 기준’은 모호
화물연대 “특고 노동자 요구 외면, 파업에 대한 왜곡된 시선”
정부는 지난달 29일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불법적 운송거부와 운송방해 행위를 일체의 관용 없이 엄정히 조치하겠다”며 “불법 집단행동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심의·의결했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파업은 정말 ‘불법’일까? 고용노동부는 “집단행동 자체를 불법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합동 브리핑문을 작성한 기획재정부에 물었다.
기재부는 “기본적으로 운송거부 자체가 사업자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불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불법’이라고 규정한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합법이지만, 불법적인 영역이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기재부는 “운송거부 과정에서 다른 운수사업자를 방해하거나 남한테 상해를 입히는 건 당연히 불법”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조사하는 것처럼 조직적으로 타인의 사업을 못하게 한다거나 하는 것도 있다”고 했다.
기재부 설명을 종합하면 화물연대 파업은 ‘합법’인데, ‘불법’ 상황을 가정하고 “불법적 운송거부”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짓는 데 대해선 정부 안에서도 혼선이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집단운송 거부가 불법이냐’는 질의에 “그런 표현이 잘못은 아니지만, 주무 부처로서 행정처분 불법 용어를 쓸 때는 행정, 형사처분을 뜻하는 용어로 쓴다. 엄격히 쓰는 걸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운송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없어 불법이라는 것인지, 업무개시명령을 어기거나 다른 운수종사자 행위를 방해하는 것이 불법인지 모호하다.
헌법 33조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돼 있다.
지난 4월부터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87호는 노사의 자발적인 단체설립 및 가입 등 ‘결사의자유’에 관한 기본원칙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스스로 단체를 조직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또 ILO 결사의자유 위원회는 “파업권은 결사의자유 원칙에서 파생되는 당연한 권리”로 인정해왔다.
김재광 화물연대 교육선전실장은 “노동자와 도로 위 국민의 생명을 위한 안전운임제를 제대로 안착시키려면 정부와 국회 역할이 필요하고, 책무가 있다”며 “이런 요구는 외면한 채 근거 없이 화물노동자들 파업에 ‘불법’을 들고나오는 것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자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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