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해악”이라는 ‘적정성장론자’ 두 사람에 물었다, “실현가능성 있나?”

김지섭 기자 입력 2022. 12. 1. 21:01 수정 2022. 12. 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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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脫성장·적정성장론’ 주장
괴펠·사이토 교수 인터뷰

인류의 당면 과제인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는 가운데 학계 일각에서 ‘탈(脫)성장론’ 또는 ‘적정 성장론’이 대두되고 있다. 성장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 성장 없이도 고용을 유지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경제·사회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독일과 일본에서 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마야 괴펠 로이파나대학 명예교수와 사이토 고헤이 도쿄대 대학원 교수를 WEEKLY BIZ가 각각 화상과 서면으로 인터뷰해 물었다.

독일과 일본에서 각각 탈성장 담론을 이끌고 있는 마야 괴펠(위쪽) 로이파나대학 명예교수와 사이토 고헤이 일본 도쿄대 대학원 교수. 이들은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성장과 소비 대신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카이 뮐러 사진작가, 이가라시 가즈히로 사진작가

괴펠 교수는 독일의 대표적인 중도우파 매체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으로부터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은 정치경제학자로, 2019년 유럽의 저명 경제학상인 ‘애덤스미스상’을 받았다. 사이토 교수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진보적 저술에 수여하는 ‘도이처 기념상’을 2018년 최연소로 수상했고, 2020년 출간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가 일본 내에서 50만부 넘게 팔리며 화제를 일으켰다.

-경제 성장이 지구에 해가 된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괴펠 교수: “정확히는 국내총생산(GDP) 중심 성장론의 폐해가 심각하다. 1930~1940년대 경기 침체와 전쟁을 겪으며 ‘생산’을 강조하던 시대에 탄생한 GDP는 환경에 끼치는 해악, 사회 전반의 고른 성장 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나라 안에서 이뤄지는 생산 활동의 총합만을 측정한다. 따라서 공장이나 농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각종 매연과 가스, 오·폐수 등 환경 파괴로 초래되는 경제적 손실이 반영되지 못한다. 가령 유조선이 좌초돼 막대한 양의 기름이 해양을 황폐화시켜도 GDP는 피해를 반영하지 않고, 그 일을 뒷수습하는 데 투입되는 기업의 경제 활동을 금액으로 추가할 뿐이다.”

사이토 교수: “생산 및 투자, 소비를 늘려 GDP를 최대한 팽창시키는 체제에서는 끝없이 폐기물이 발생하고, 제조·유통·판매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탄소가 배출될 수밖에 없다. 일상에 크게 필요하지 않는 온갖 종류의 제품이 넘쳐나도록 방치하는 체제가 어떻게 지속 가능할 수 있겠나. 과잉 생산과 소비, 그것을 부채질하는 광고, 단기적 신제품 출시 등을 멈추지 않으면 친환경 기업이 아무리 많아져도 지구의 온도는 계속 높아진다. 위기를 직시하고 하루속히 ‘탈성장형 포스트 자본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기술적 진보와 성장을 모두 부정하는 것인가.

사이토: “전혀 그렇지 않다. 그간의 성장이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어줬고, 기술 혁신이 생활에 크나큰 편의를 제공했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온난화로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에 기후 위기를 부추기는 가파른 성장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성장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저개발 국가들은 ‘사회적 기초’가 충실해지도록 아직 더 성장해야 한다. 반면 충분히 경제 규모를 키운 선진국은 성장을 목표로 하기보다 환경과 사회의 웰빙, 즉 ‘부엔 비비르(Buen vivir·좋은 삶)’를 중시하는 탈성장 사회로 이행할 필요가 있다. 기술 혁신도 가상 화폐나 NFT, SNS처럼 일상과 큰 관련이 없는 분야보다는 교육과 의료, 농업 등에 돈과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소득 계층에 따른 전 세계 탄소 배출

-성장이 정체되면 실업률 증가, 소비 위축 등으로 ‘대공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진 이들이 많다.

괴펠: “경제 규모를 ‘파이’에 비유할 때, 이미 상당수 국가들이 매년 몇 %씩 성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나눠 먹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전체의 1%, 10%가 지나치게 많은 파이를 독식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미 충분히 커진 파이를 얼마나 더 키울지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잘 나눠 사회 전체의 행복과 안전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처럼 살면 수십 년 안에 지구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파괴된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지는데도 성장·소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병적인 집착에 불과하다. 소비를 줄인다고 초라한 삶이 되는 것이 아니다.”

-탈성장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나.

괴펠: “일회용 플라스틱컵 대신 텀블러를 쓰고, 내연 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타는 정도의 변화만으로는 지구를 살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심각한 위기 상태’라는 진단이 지구에 내려진 만큼 지구를 망가뜨린 일상의 관행을 벗어날 방법을 고민할 공론의 장을 시민들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플라스틱 생수를 집에 몇 통씩 쌓아 놓고 마셔야 할까’ ‘하루 세 끼를 꼭 육류·계란·우유로 범벅이 된 식단으로 채워야 할까’ ‘지구에 막대한 해를 끼치는 기업의 제품을 값이 조금 저렴하다고 해서 구매해야 할까’ 같은 고민들이 모여 커다란 목소리가 되면 그 목소리에 정치인들이 반응해 정책이 만들어지고 기업들이 변화한다. 그런 변화가 쌓이면 한때 고도성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듯 탈성장이나 적정 성장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때가 올 것이다.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정치인과 정부는 (표 때문에) 먼저 탈성장 제언을 할 수 없고, 기업 역시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까 봐) 스스로 대량의 저가 제품 생산을 중단하지 못한다.”

-취지에 공감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사이토: ”'3.5%’의 희망에 대해 말하고 싶다. 3.5%의 사회 구성원이 진심을 다해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면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의 연구 결과에 기반한 이론이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3.5% 정도의 힘을 모으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이미 유럽의 일부 도시에서는 자체적으로 소고기 과잉 소비 제한과 국내선 비행기 축소, 에어비앤비의 영업 일수 제한 등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2020년 1월 ‘기후비상사태선언’을 했는데, 이 선언은 ‘기후 변화를 멈추자’는 얄팍한 호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도시 공공 공간의 녹지화, 전력과 식량의 자급자족, 자동차·비행기·선박 운항 제한, 에너지 빈곤 해소, 쓰레기 삭감 등 240개 이상의 구체적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세계에 점차 확산될 것이라 생각한다.”

괴펠: “팬데믹 사태가 변화의 주요 기점이 됐다고 본다. 록다운을 경험하며 많은 이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 인간을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교훈도 얻었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는 그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이다. 성장을 멈추자고 하거나 분배의 중요성을 얘기하면 ‘자본주의자인지 사회주의자인지 밝히라’며 이념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구의 건강을 하루속히 회복시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지 더 이상 이념 논쟁에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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