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칼럼] 예술의 힘
서경식 |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번역 한승동(독서인)
불타오르는 듯한 단풍의 계절이 왔다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며칠 전 일 때문에 오사카에 머물던 차에, 오카야마까지 가서 구라시키시 오하라미술관을 찾았다. 오사카에서 신칸센으로 1시간 남짓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코로나 재난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으나 꽤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연일 쾌청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날만은 차가운 비가 내렸다. ‘미관지구’로 지정돼 역사적인 건조물이나 거리가 그대로 보존된 구라시키시 옛 시가지가 비에 젖어 있는 풍정도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오하라미술관은 1930년에 개관한 일본 최초 서양미술 전문 사립미술관이다. 내가 처음 이 미술관을 찾은 것은 중학교 수학여행 때였다. 이후 약 60년 동안 몇번이나 이 미술관을 찾았을까.
그 뒤로도 인생을 살면서 일본에서도 구미 각지에서도 뭔가 벽에 부딪히거나, 나아갈 길을 잃어버리거나, 살아가는 일에 지쳤을 때는 종종 습관처럼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 습관이 시작된 것은 그때, 즉 60년 전 이곳에서 만난 루오, 수틴, 모딜리아니, 세간티니, 엘 그레코 등이 그린 많은 서양회화로부터 받은 충격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리운 옛 동무의 모습을 확인하듯 그런 작품들과 재회했다. 더욱 인상 깊었던 작품은 루오의 <피에로>다. 루오는 볼 때마다 새로운 발견과 감동을 안겨준다. 옆얼굴 모습 피에로의 사악함을 담은 눈길. 인간성의 어두운 면을 응시하는 루오다운 작품이다. 그 깊은 슬픔….
페스트 재난과 함께했던 서양 르네상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의 20세기는 죽음의 짙은 그림자로 뒤덮인 시대다.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르네상스 시대는 유례없는 예술 유산을 우리에게 남겼다. 우리 시대는 어떨까? 파괴 뒤 공허한 잔해들만 남지 않을까?
귀로의 기차 안에서 평소에는 보지 않던 객차에 비치된 잡지 <웨지>(2022년 12월)를 무심코 폈더니 관심이 가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미 ‘서방의 무기 공장’, 한국 방위산업이 잘나가는 이유”) 이 기사에 따르면, 올해 9월 서울에서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이 열렸는데 한국 국내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계자들의 열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올해 7월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한 폴란드와 미국·유럽·일본의 최신예 전차에 필적하는 성능을 갖춘 ‘K2’ 전차 980대, 세계적 수준의 ‘K9’ 자주포 648문 등 총 25조원어치 무기 구매 계약을 한 것이 그런 ‘성황’의 요인이다. 한국은 이미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북유럽 및 발트 3국과 잇따라 무기 수출 계약을 맺었다. 기사는 “각국에서 수주가 잇따른 한국 방위산업은 사실상 서방 자유주의 국가 그룹의 ‘무기 공장’이 되고 있다”며 “주변국에 뒤처져버린 우리 나라(일본)”의 방위산업 진흥을 호소하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나자, 이 분야에 내가 너무 무관심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죽음의 상인’이란 말이 있었고, 전쟁으로 폭리를 취하는 것은 가장 타기해야 할 행위로 비판받았다. 적어도 나는 그런 감각을 소중히 여기며 자랐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이 ‘죽음의 상인’ 나라가 돼 버린 것인가? 아무도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비판하지 않는가?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병력과 무기가 부족한 러시아에 ‘북’이 무기를 제공할 것(이미 하고 있나?)이라는 보도도 있다. 민족 전체가 식민지배를 받고 분단까지 됐는데 그 쌍방 당사자들이 지금 진행 중인 세계 규모의 분단과 전쟁에 ‘무기 제공자’로서 관여하고 있다. 나중에는 ‘병력 제공자’가 될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인가?
가을비를 맞는 듯한 우울한 생각으로 신문을 펼치니, 거기에는 중국 미술가 아이웨이웨이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박해받은 아버지와 나, 중국을 그린다’, <아사히신문> 2022년 11월22일) 자전적인 저서 <천년의 환희와 비애>의 일본어판 간행을 앞두고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그에 관해서는 나는 이전에 몇번인가 글을 썼다. 그 가운데 하나는 그가 감독한 장편 다큐멘터리 작품 <휴먼 플로/대지 표류>(2017년 독일)에 대한 감상이다. 세계 23개국 40곳 난민캠프를 돌며 제작한 거대한 투시도(perspective) 같은 작품이다. 작중에 모습을 드러낸 그 자신은 고대 중국의 신선 같기도, 시골 농부 같기도 하다.
그는 뛰어난 현대미술가·건축가이면서 동시에 반골적인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몇번이나 정부의 삼엄한 감시 아래 놓이고 연금당했다. 이제는 중국 국내에 머물 수 없어 독일 등에 거점을 두고 있다. 나는 2017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국제미술전에서 그의 인스털레이션(설치미술) 작품을 봤다. 주 전시장 벽면 전체에 부착된 무수히 많은 오렌지색 이상한 물체들이 거센 태풍의 비바람에 심하게 나부꼈다. 그 물체들은 난민들이 타고 바다를 건넌(또는 건너가다 실패한) 고무보트였다. 벌써 5년 전 일이다. 그동안 세계는 더 나빠졌으나 아이웨이웨이는 건재했다. 기사 말미에 이런 그의 말이 소개돼 있었다. “예술가는 전쟁을 막을 수 없었고 지금도 막을 수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력하지만, 감정에 호소해 잘못된 사고를 하는 국가에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 각자의 인생은 의미 있는 아름다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얼마나 무력한가. 전쟁을 막을 지혜도 힘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절망적인 세계에서 농부가 지칠 줄 모르고 가뭄으로 황폐해진 밭을 가는 것처럼, 늘 양심이나 인간성을 상기시키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해 왔다는 것도 상기시킨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 아닐까.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뒤에도 살아남을 소수의 ‘20세기 르네상스’ 유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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