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이 꼭 알아야 할 것
[세상읽기]
[세상읽기]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장면 하나. 서울 용산. 이슬람 율법을 따라 ‘할랄 방식’으로 조리한 한식 오찬이 놓여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대통령 관저에서 극진히 대접했다. 양국 정부와 기업은 모두 합쳐 300억달러(약 40조원) 규모인 계약·투자 양해각서(MOU) 26건을 체결했다고 한다. 언론은 새로운 ‘중동 붐’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장면 둘. 대구 북구. 이슬람 혐오와 조롱, 저주를 상징하는 돼지머리가 놓여 있다. 이슬람사원 공사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이 사원 공사부지 앞과 인근 주택 앞 의자 위에 돼지머리를 올려놨다. 돼지고기는 이슬람교의 대표적인 금기 식품으로, ‘돼지머리’를 이슬람사원 앞에 전시하는 것은 가장 높은 수위의 이슬람 혐오 행동이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방치하거나 정당화하는 견해를 밝혔다. 대다수의 언론은 그냥 침묵한다.
지난해 2월 대구 북구 대현동에서 적법한 건축허가 절차를 밟아 건축 중이던 이슬람사원 공사현장에 공사중지처분이 내려졌다. 북구청장은 신축이 이뤄지던 중 재산권 침해 등 주민들 민원이 제기됐다며 ‘주민들과 합의하여 민원 해결 시까지’ 공사를 중지하도록 했다. 이어 공사현장 주변에 이슬람 혐오 펼침막들이 지속해서 여럿 게시되는 일이 벌어졌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접수됐다.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는 북구청장에게 무슬림과 이슬람교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에 기초한 일방적인 민원을 이유로 공사중지 통보를 한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으므로 공사가 재개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무슬림들에 대한 혐오 표현 등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광고물에 관해서도 이슬람사원 쪽과 그 구성원들에 대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이슬람사원 쪽에서는 북구청장의 공사중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2월 대구지법은 공사중지처분을 취소하라며 사원 쪽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공사중지처분 당시 당사자들에게 사전 통지하거나 의견제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당사자들이 어떤 법령을 근거로 처분이 이뤄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며 처분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확인했다. 또한 아무런 법령상 근거도 없이 건축법 위반행위가 없음에도 내려진 공사중지처분은 실체적으로도 위법하다고도 판단했다. 이 판결은 대구고법을 거쳐 지난 9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국가인권위 결정, 대법원 판결 등이 있었음에도 공사는 제대로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주민들은 공사를 방해하고 있고, 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방치 조장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돼지머리 사건’이 벌어졌다. 이는 단순한 공사 방해를 넘어 종교와 그 종교적 믿음, 종교인들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하지만 경찰은 경찰관직무집행법상 경찰관이 개입할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말만 늘어놓고, 북구청은 돼지머리가 사유지 안에 있어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답했다. 그 뒤 이어진 자세한 질의응답 과정에서 북구청은 “돼지머리 방치는 북구청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며 “돼지머리 등 물품 등은 사원 건축을 반대할 목적으로 사용 중에 있어 해당 주민에게는 필요한 물품이며, 일정 주기로 새 물품으로 교체하는 등 관리”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슬람 혐오 선언과도 같은 답변이다. 과연 교회 주변에 십자가를 거꾸로 매달아 적그리스도를 표현했어도 북구청이 똑같은 태도를 취했을지 의문이다.
‘돼지머리 사건’은 한국이 이슬람 혐오 국가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케이팝 스타 비티에스(BTS)와 <오징어 게임>의 성공에는 열광하면서 자국 내 이주민, 난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제하고 무시하는 한국의 권력층과 상당수 한국인의 인식 수준을 드러내고, 그 혐오와 차별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권에 철저히 반할 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경제적 손실과 테러의 위험을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서 자초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꼭 알아야 한다. 혐오와 조롱, 저주의 돼지머리 사건의 실체와 그 의미를. 그리고 즉각 필요한 견해를 밝히거나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고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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