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의장의 낡은 혐오
이지혜 | 경제팀 기자
운이 좋은지 우물 안 개구리여서인지, 내 주변에 성소수자는 있어도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차별주의자는 없다. 퀴어축제에 와서 “동성애는 죄”라 외치던 분들은 먼발치에서만 봤다. 그런 내가 맞닥뜨렸던 손에 꼽는 차별주의자들은 놀랍게도 모두 정치인이었다. 최근 저출생 해결책으로 ‘동성애 치유회복운동’을 언급한 김진표 국회의장이 그중 하나다.
김 의장이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되던 2019년 한 저녁식사 자리. 정치부 말진이었던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의원님은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많았는데 정말 차별주의자세요?” 마침 그의 보좌관도 ‘성소수자에 대한 의원 생각이 바뀌었으니 한번 물어보라’며 바람을 잡았다. 김 의장은 기다렸다는 듯 “아니”라고 했다. 무릇 종교라면 성소수자를 포용해야 한다며 차별에 반대한다고 했다. ‘자리 욕심이 사람을 변하게도 하는구나’ 싶을 즈음 그가 덧붙였다. “동성애자는 차별이 아니라 치유해야 한다”고. 보좌관이 운까지 띄운 준비된 발언이었지만 명백한 혐오였다.
이미 의과학 영역에서는 성적 지향이 선천적 정체성이라 결론 내린 지 오래다.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전환’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과거 ‘전환치료’라는 이름으로 행해온 전기 충격, 약물 투여, 뇌 수술 등 각종 인권침해 시도들을 지금은 선진국 대부분이 금지하고 있다. 한국의 숱한 교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지만, 그들은 한때 장애도 신이 내린 징벌이라 생각했다. 김 의장은 동성애를 질병으로 낙인찍고 동료 시민을 갱생 대상으로 보는 보수 기독교적 혐오를 고스란히 보여준 셈이었다.
대체 그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①나는 여전히 차별주의자다? ②나는 차별이 뭔지 모른다? ③나는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보던 강경 혐오에서 갱생 대상으로 보는 ‘덜’ 강경 혐오로 입장을 바꿨다? 그 자리를 마칠 때까지 답을 찾지 못했다. 식당에서 나와 차에 오르는 그를 붙잡고 마지막까지 물었다. “아까 말씀하신 동성애자 치유가 설마 전환치료 얘기는 아니죠?” 그는 “차별은 안 돼요~” 하더니 떠나버렸다.
충격적인 말을 듣고 나니 애써 달리 해석하고 싶은 방어기제가 발현됐다. ①혹시 이 무자비한 차별 사회 속에서 성소수자가 받았을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뜻 아닐까? ②혹시 퀴어 프렌들리한 병원이 부족해 성소수자 건강권 문제가 심각하니 바로잡자는 뜻은 아니었을까? ③음…. 그만두자.
그때 그는 총리가 되지 못했지만 올해 7월 국회의장이 됐고 여전히 한결같다. 2022년 대명천지에 동성애를 ‘치유’해서 ‘탈동성애’ 한 젊은이들이 애를 낳으면 저출생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반인권적 인식을 꼬집는 기사는 10년째 나오고 있다. 그렇게 긴 시간 ‘차별주의자’라 비판받으면 차별이 뭔지 공부할 법도 한데…. 이번 발언으로 그가 성소수자 인권뿐 아니라 저출생 문제에도 고민이 없다는 사실만 추가로 드러났을 뿐이다. 그는 아마 지금도 “차별은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보언론 기자들을 앉혀놓고 동성애 치유를 운운할 정도로 차별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이런 김 의장의 극우적 신념을 개인의 문제로 취급한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김진표는 국민의힘에 갖다 놔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를 압도적 지지로 의장에 올린 건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에서 평등법 제정을 위해 힘쓰고 있는 이상민 의원은 당시 의장 후보를 뽑는 의원총회에서 겨우 2표를 받았다. 민주당의 ‘국회의장 평가 기준’에 인권감수성 항목은 아예 없었던 게 분명하다.
이러고도 민주당과 김 의장을 따로 볼 수 있을까? 국민의힘이 더 보수적이니까 민주당은 한결 낫다고 봐야 할까? 민주당은 김 의장과도 선을 긋지만 성소수자와도 선을 긋는 당이다. 노무현의 공약이었던 차별금지법은 이제 민주당엔 ‘나중에’ 할 일일 뿐이다. 아닌 척은 말자. 이번 김 의장의 혐오 발언은 민주당이 용인한 폭력이나 다름없다. ‘김진표 국회의장’ 자체가 민주당의 현주소다.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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