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20년 동안의 고통

한겨레 입력 2022. 12. 1. 19:00 수정 2022. 12. 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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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화물연대 파업]화물연대가 주장하는 안전운임제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화물차 노동자 스스로 운전시간 총량을 제한할 필요도 있다. 이는 곧, 일부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 값싸게 이용해오던 물류, 배달 비용을 모두가 조금씩 더 지불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한 업무개시명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지난 29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관련 부서에서 직원들이 업무개시명령 송달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권일 | 사회비평가·<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2003년 5월6일,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분노를 터뜨렸다. “이해가 안 됩니다. 지금 한 도시의 부분적 기능이 마비되어버렸는데 왜 관계부처 장관한테서 보고도 없는 거예요?”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분노가 향한 곳은 국무위원들, 특히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이었다. 이때 화물연대의 파업은 포항에서 시작해 창원과 광양으로 확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부처만이 아니라 많은 언론도 2003년 당시엔 사태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정브리핑특별기획팀, <참여정부 경제 5년>, 2008)

외환위기 이후 극단적으로 악화한 불평등은 노동자·서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화물차 운전자는 원래 운수업체 정규직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소위 지입제라는 형태가 생기고, 소위 특수고용노동자가 됐다. 한국 특유의 악질적 하청 구조에서 지입제 역시 예외가 아니었고, 화물차 운전자들은 너무 적은 수입을 벌충하기 위해 과로를 넘어 ‘초(超)과로’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졸음운전 등으로 인한 교통사고도 빈발했고 숱한 시민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이런 지입제의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자영업자와 운송업자 간 자율계약’이라며 수수방관해왔다. 곪은 문제는 종기처럼 터졌다가 어설프게 봉합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2022년 11월, 화물연대 파업에 윤석열 대통령이 꺼내 든 ‘업무개시명령’은 사실 노무현 정권 때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하며 처음 만들어졌다. 업무개시명령에 노동자가 불응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2004년 도입 때 들어간 과도하게 자의적인 표현, 예컨대 “정당한 사유 없이” “커다란 지장” “매우 심각한 위기” 등이 너무 모호하다는 비판과 함께 강제노동, 단체행동권 침해 등 위헌 논란도 있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입을 모아 우려하고 성토했지만 결국 강행 처리됐다. 화물차 노동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건 윤석열 정권이 처음이다. 노무현이 만든 철퇴를 윤석열이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화물연대 파업에 내려진 업무개시명령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협약 위반이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29호 ‘강제노동 협약’을 비준해 올해 4월부터 발효된 상황이다. 29호 협약은 ‘처벌 위협으로 강요받는 노동’, ‘자의에 의하지 않는 모든 노동’을 강제노동으로 규정한다. 또한 협약 문서에는 예외, 즉 강제노동이라 규정하기 어려운 긴급하고 필수적인 노동이 열거돼 있다. “전적으로 군사적인, 의무적 병역법에 의해 강요된 노동” “자치국의 통상적인 시민의 의무에 해당하는 서비스” 그리고 “전쟁, 화재, 지진, 극심한 전염병 등 일반적으로 인구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에서의 노동”이다. 즉, 응급의료는 큰 틀에서 이 강제노동의 예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화물차 운수노동은 명백히 예외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 게다가 업무개시명령은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을 제한해 위헌 소지도 크다.

윤석열 정권의 비이성적이고 불법적인 대응과 별개로, 화물연대 파업은 시민에게 숙의를 요청한다. ‘초과로’로 점철된 화물차 운전은 20년 동안 일부 특수한 노동자들이 겪어온 고통이지만 크게 보면 한국 사회의 보편적 문제이기도 하다. 고도성장기 노동집약 산업의 노동만이 아니라 ‘플랫폼 노동’이나, 이른바 ‘크런치 모드’로 유명한 아이티(IT) 노동처럼, 최근 늘어나는 많은 노동이 이처럼 ‘과로할수록 돈을 버는 구조’인 까닭이다.

이 구조를 바꾸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안에 국한한다면, 화물연대가 주장하는 안전운임제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화물차 노동자 스스로 운전시간 총량을 제한할 필요도 있다. 이는 곧, 일부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 값싸게 이용해오던 물류, 배달 비용을 모두가 조금씩 더 지불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비용을 더 지불한다고 하면 펑펑 돈을 쓰는 이미지를 연상하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실은 반대다. 예산은 늘 제약된다. 동료 시민의 존엄과 안전을 위해 비용을 더 지불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자원을 착취하며 폭주하는 성장 신화에서 탈출해 서로를 아끼고 돌보는 세계로 가는 첫걸음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탈출할 의지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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