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시선이야, 몸이 아니라”
[크리틱]
[크리틱]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누드가 왜? 네 시선이 너무 루드(무례)하잖아.”
요즘 인기가 뜨거운 케이팝 ‘Nxde(누드)’는 이런 가사로 시작된다. 어느새 익숙해진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다 보니 누드를 소재로 여성, 특히 그 몸을 바라보는 시각을 꼬집는 내용이 흥미롭다. 뮤직비디오 전개도 범상치 않은데, 전통 미술장르인 누드화에서부터 최근의 미술현장까지 담아내며 예술형식 안에서 작동하는 통속의 뻔한 시각을 참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엄격히 말하자면 서구 문화에서 알몸과 누드는 다르게 의미된다. 알몸이 단지 벗은 상태라면 누드는 재구성된 나체의 이미지를 뜻한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1903~1983)는 저작 <누드>에서 “화가 앞에 서있는 볼품없고 가엾은 모델을 보게 된다면 벌거벗은 인체에 대한 망상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눈을 즐겁게 하는 누드화 속 나체는 알몸의 실체가 아닌 관객 또는 화가 자신의 욕망을 투사한 상상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의미다.
시각예술에서 누드는 한마디로 보는 자를 전제한 장식된 몸이다. 유구한 전통에서 누드화는 주름이나 처진 살 같은 결함을 감추고 ‘비너스’라는 실재하지 않는 여신의 이름을 빌려 보고자 하는 이상적인 몸을 디자인해 왔다. 성적 욕망을 더해 인체비율을 왜곡시킬 정도로 자세를 비틀기도 했다. 여기에 유혹하듯 나른한 시선 처리는 통속의 화룡점정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누드를 욕망을 자극하는 그릇된 예술형식으로 깎아내리기도 했다.
누드가 지닌 장식성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누드화 장르 안에서도 벌거벗은 몸을 왜곡된 시선 없이 표현한 예를 구분한다. 다시 말해 벗은 몸을 표현하는 예술형식이나 알몸 자체는 지극히 평범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옷을 벗든 입든 그 몸을 대상화해 욕망대로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다. 타인의 몸을 향한 시선은 성적으로, 인종차별적으로, 때론 이데올로기로 작동해 타인을 억누르기도 한다.
예컨대 파리를 주 무대로 활동했던 폴 고갱(1848~1903)의 1892년 작 〈죽은 자의 혼이 바라보다〉는 성과 인종, 그리고 유럽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점철된 사례로 언급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벌거벗은 채 침대에 엎드린 짙은 피부색의 앳된 소녀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제국주의 시대를 살았던 고갱이 프랑스의 식민령 타히티의 풍경을 연구하고자 머무는 동안 결혼했던 테하아마나라는 이름의 현지 여성으로, 당시 그녀의 나이는 불과 열세 살이었다.
고갱은 이 작품을 타히티에서 그렸지만, 염두에 둔 관객, 즉 잠재고객은 파리의 백인 남성이었다. 1893년 파리의 유명 화랑에서 작품이 공개됐을 때, 그림 속 소녀는 ‘타히티의 올랭피아’로 불렸다. 올랭피아는 당대 파리에서 고급 매춘부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파리인의 시선에서 유색의 어린 소녀가 고갱의 부인으로 보일 리 만무했다. 게다가 고갱은 이미 다섯 자녀를 둔 40대 기혼 남성이었다.
미술사에서 고갱 개인의 도덕성은 논외의 영역이다. 확인할 바는 타히티의 관습대로 양부모 손에 이끌려 어린 나이에 결혼한 현지 여성이 백인 남성의 잣대로 대상화된 통속의 시선이다. 고갱은 부인과 자녀들을 의식한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캄캄한 밤 벌거벗고 침대에 누운 어린 원주민 여인이 고뇌에 찬 자신의 얼굴을 유령으로 착각해 공포에 사로잡힌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는 내용이었다.
고갱은 미신을 믿는 타히티 여인의 공포와 대비해 스스로를 고뇌에 찬 문명사회의 지식인으로 설정했다. 여인은 음란할 수 있으나 작품은 순결하다는 이항대립의 위선 속에 자신의 관음증과 욕망을 감추려 했다. 미술사 내에서 이를 처음 문제시했던 그리셀다 폴락(1949~)은 이름 높은 작가에 대한 무비판적 숭배 속에 은폐돼 온 폭력적 시선을 환기했다. 타인의 신체가 음란해 보인다면 그렇게 보고자 한 시선을 되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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