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선임에 금리까지 사사건건 개입… 新관치에 멍드는 금융시장

강길홍 2022. 12. 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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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흥국생명 사태는 키우고
예금 이어 대출금리 인상자제 압박
"제 역할 못하고 불안만 키워" 비판
김주현(왼쪽)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 금융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권에 관치의 악령이 살아나고 있다.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선임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을 서슴지 않을 뿐더러, 예금금리에 이어 대출금리마저 통제하려 한다.

금융시장 가격(금리)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반드시 '시장의 복수(부작용)'를 낳는다.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정작 제 역할을 못하면서 시장 불안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수신 금리 내려라" 압박=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초부터 개별 금융사들의 대출 금리를 모니터링하면서 사실상 대출 금리 추가 인상을 막기 위한 압박에 나섰다. 예금 금리 인상을 자제하라고 요구한 데 이어 대출 금리 인하도 유도하겠다는 방침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24일 한국은행(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을 전후로 은행권에 예금 경쟁 자제를 촉구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역머니무브 현상이 최소화되도록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경고했다.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기준금리 인상에도 예금 금리는 되레 뒷걸음질했다. 연 5%대를 돌파했던 주요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4%대로 내려앉았고, 지난달 24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의 서슬퍼런 경고는 먹혀든 셈이지만, 금융소비자들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금융당국이 예금 금리 인상 자제를 압박하면 은행으로선 대출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면 은행의 자금중개 능력이 위협받아 결국 자금의 원활한 흐름에 문제가 생긴다. 기준금리는 올리면서 예금과 대출 금리는 억제하는 모순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 인사에도 노골적 개입= 금융당국은 금융권 인사에도 노골적으로 개입한다. 금융위는 지난달 29일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중간논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금융권 중대 사고와 관련해 대표이사는 물론 이사회, 임원에게까지 내부통제 책임을 물어 징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불완전판매, 거액 횡령, 이상 외환거래 등 사회적 파장이 큰 금융사고가 터지면 금융지주 회장에게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올해 발생한 사고에 대한 소급적용도 검토 중인 만큼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금융지주 회장의 자회사 경영 관리에는 적절한 내부통제 시스템 운영도 포함된다"며 "당연히 내부통제 관리의무가 생기는 만큼 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낙하산 인사나 관치를 위해 금융권 CEO의 목줄을 쥐겠다는 의도로 해석한다. 이 원장은 지난달 14일 8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승계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투명한 인사의 원칙을 강조했다는 입장지만 금융당국 수장이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만나 CEO 인사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한 자체가 이례적이다. 특히 올해 들어 금감원이 현장검사에 나선 금융사 CEO들이 줄줄이 물러나고 있어 금융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원장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현명한 판단'을 요구한 것도 상당한 논란을 불렀다. 우리은행 라임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문책경고를 받은 손 회장에게 사실상 소송에 나서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탓이다. 손 회장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 관련해 중징계를 내리자 행정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모두 이겼다.

◇시장안정엔 무능력= 금융회사의 경영까지 간섭하고 있는 금융당국이 정작 본연의 임무에서는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사태가 대표적이다. 레고랜드발 자금경색 사태와 관련해서는 뒷북 대책으로 위기를 키웠고,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사태도 방관하다가 뒤늦게 외국인들에게 관치금융의 실세만 확인시켜줬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금융권에 잘못된 신호를 주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융당국의 관치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조해왔던 '자유'에도 위배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금융시장만큼 자유가 중요한 데가 없다"면서 "정부가 은행의 예금금리·대출금리에 간섭하고 CEO 인사까지 관여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개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관치금융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금융사) 경영자 시장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며 "경영자가 능력을 발휘하고 또 검증 받아서 자리를 잡는 그런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고 밝혔다.강길홍기자 sliz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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