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위기땐 관치다

송성훈 기자(ssotto@mk.co.kr) 2022. 12. 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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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동산 모두 거래절벽
한방향에 쏠릴때 가장 위험
케인스식 접근법 필요할 때
정부가 시장실패 막아야

영혼까지 끌어와 대출을 받았던 '영끌족'이 되레 벼락거지로 내몰릴 처지다. 투자했던 아파트와 가상화폐가 속절없이 무너졌고 갚아야 할 대출이자는 3배 가까이 뛰었다. 월수입을 다 끌어와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회초년생이 속출한다.

젊은 영끌족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영끌족 대책을 거론하면 도덕적 해이와 공정의 이슈에 마주한다. 본인 책임으로 과도하게 투자했다가 입은 손실에 왜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냐는 이유다. 한탕을 노렸으면 그에 부합하는 위험도 스스로 감당해야 공정하다는 취지다.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마냥 피할 수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출받아 내 집을 마련할 기회를 왜 막느냐"는 정치 구호에 경제 논리가 휩쓸린 대가라고 본다. 전문가들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대출규제를 유지할 것을 주문했지만 '부자만 대출해주냐'는 정치 논리를 이겨내기 어려웠던 셈이다. 한국은행이 과감한 금리 인상에 나서기 힘든 분위기였고, 가계부채 억제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웠던 금융당국이 목소리를 높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저금리에 대출처럼 쉬운 게 없을 정도였다. 그사이 시중 유동성은 눈덩이처럼 급증했고 넘쳐나는 현금은 부동산으로, 가상자산으로 흘러넘쳤다.

연초부터 미국이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역전됐다. 따라가기 힘들 만큼 금리가 오르자 금융시장이 뒤죽박죽이다. 막대한 적자를 메우려는 한국전력의 채권 발행은 시중 자금을 싹쓸이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시중은행까지 가세하면서 자금시장은 씨가 마르고 있다. 저축은행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시중은행이 예·적금 금리를 올리자 제2금융권에서 악 소리가 터지고 있다. 돈을 끌어모으겠다는 움직임만 있을 뿐 풀겠다는 흐름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자산시장에서는 다들 가격이 더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상황이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시장에 개입해 연착륙을 시키려고 하면 들고 일어설 투자자들도 많다. 저가에 들어가야 하는데 왜 막느냐는 논리다. 아파트도 더 내려가길 기다리고, 주식도 좀 더 하락하길 기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 모두 멈춰선 느낌이다. '시장 실패'를 거론하는 이유다. 시장 기대가 한 방향으로만 쏠릴 때가 가장 위험할 때다. 모든 사람이 어딘지 모를 바닥만 기다리고 있다면 바닥에 가기도 전에 시장은 무너지고 충격은 공포스럽게 커진다. 저가 매수할 기회조차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IMF 외환위기 때 경험했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인위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위기 때면 여지없이 관치가 나타나는 이유다. 예를 들어 한시적인 세금 완화를 통해서라도 아파트 거래절벽을 풀어줘야 한다. 세금 혜택을 노리고 매수에 나서겠다는 사람이라도 만드는 방식으로 시장 내에 다양한 기대를 바탕으로 거래를 성사시켜야 한다. 시장이 연착륙해야 저가에 매수할 기회도 얻고 영끌족이 손해를 보더라도 집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영끌족을 돕자는 게 아니라 시장을 살리자는 취지다.

대출금리도 마찬가지다. 고금리에 경제는 무너지는데, 사상 초유의 최고 실적 잔치를 펼치는 은행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고금리 시대에 은행이 돈을 번다고 하지만 리스크는 고객에게 떠넘기고 수익만 가져간다면 당국이 개입할 여지는 더욱 커진다. 실제로 최근 대출금리는 과거 기준금리 인상 때보다 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때마침 신한은행이 주택담보대출 금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자를 유예한 조치는 환영할 만하다.

관치금융을 절대악처럼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위기 때는 케인스주의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다만 정치를 철저히 차단하고 시장을 읽는 관치가 필수적이다.

[송성훈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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