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뻥 크로스
이강인 걸 빼면 거의 '뻥'
감아 차지 않고 붕 띄운 것
경기 지배한 듯 보이지만
한국이 실속 못 챙긴 이유
필자는 축구광이다. 축구를 직접 안 한 지 칠팔 년 됐지만 밤에 프리미어리그나 라리가, 세리에A 경기를 감상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옛날 우리 대표팀의 축구를 '뻥 축구'라 했다. 골대 위 하늘로 날려 버리는 슈팅 탓이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상대방이 압박을 할 때 허둥거리는 장면도 현저히 줄었다. 이건 파울루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가 남긴 선물이다. 한 가지 해결되지 않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데, 크로스 수준이다.
축구 기록 전문 매체 옵타의 가나전 기록을 보면 우리 팀은 크로스 35개를 시도해 15개를 성공했다. 우리 선수 몸에 먼저 맞으면 크로스 성공이라고 한다. 가장자리 방향으로의 크로스 5개를 빼면 30개가 골대 방향 크로스였고 11개가 성공이었다. 크로스 성공 횟수가 기록적이라고 하는데 품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손흥민 소속팀 토트넘의 에메르송 로얄은 라이트 윙백이다. 선한 웃음을 가진 브라질 선수다. 수비도 잘하고 스피드도 좋다. 다만 크로스의 품질이 형편없다. 에메르송이 상대방 진영 오른쪽 깊숙이 들어가서 크로스를 하면 기대를 안 한다. 회전도 없는 느린 공을 붕 띄워서 문전으로 보내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가 브라질 대표 후보군에는 속했지만 탈락한 것은 형편없는 크로스 실력 때문일 것이다.
크로스를 하려면 흔히 수비가 방해를 하기 때문에 직선 크로스는 수비의 발에 잘 걸린다. 이럴 때 필요한 게 감아 차기다. 공을 휘게 찰 수 있으면 수비의 발 앞으로 좀 여유를 두고 통과시킬 수 있다. 이게 안 되면 목적지를 향해 직선으로 찰 수밖에 없는데 수비의 발에 걸리기 쉽다. 우리가 이렇게 놓치는 크로스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심지어 수비가 앞을 막지 않을 때도 붕 띄워서 대충 가운데로 보내는 크로스가 흔하다.
빠른 속도로 목적지에 제대로 배달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뻥 크로스'라 할 수 있다. 뻥 크로스가 우리 선수 머리에 먼저 맞아서 크로스 성공 1개가 추가돼도 별 의미는 없다. 지난 가나전에서 우리 팀은 이강인의 크로스를 제외하고는 30개 중 대부분이 뻥 크로스였다. 얼핏 경기를 지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속이 없었다.
감아 차기를 못해서 수비의 발에 맞히는 직선 크로스, 공중으로 붕 띄워 날아가는 크로스는 '그냥 대충 가운데 방향으로 차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차는 것이다. 동네 축구의 마음이다. 가나전에서 골로 연결된 김진수의 크로스도 뻥 크로스였는데 운 좋게 뒤에서 탄력을 받은 조규성이 날아들면서 골이 됐다. 김진수가 워낙 어려운 상황에서 건져낸 공이라 그런 크로스라도 올린 것이 대단하다. 여하튼 스물다섯 개쯤의 뻥 크로스 중 한 개가 얻어걸렸다. 반면 이강인의 크로스는 모든 것을 갖춘 세계 최고 수준의 크로스였다. 단 한 번 만에 골로 연결됐다.
이강인의 크로스 1개는 뻥 크로스 스무 개의 가치가 있다. 그런 선수 대신 뻥 크로스 수준에 머물러 있는 선수를 선발로 기용해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기는 힘들다. 이강인은 탈압박 능력도 좋다. 상대 선수 서너 명의 압박을 벗기고 빠져나오면 잠시 동안 10대7로 싸우는 유리한 상황이 된다.
국가대표 윙어나 윙백이 제대로 된 크로스를 못하면서 왜 따로 보완 연습을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한 천 번만 연습하면 뻥 크로스 수준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텐데. 확률 야구를 추구하던 김인식 감독은 선수가 수비에서 실수를 하면 같은 장면을 수없이 반복 훈련시켜 실수 확률을 줄였다. 축구의 크로스를 그런 식으로 개선 못할 이유가 없다.
몇 가지 문제가 더 있지만 대표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뻥 크로스라고 본다. 크로스 횟수가 기록적으로 많다는 것은 대안을 못 찾아 대충 처리한 상황이 잦다고 볼 수도 있다. 다른 과정을 허사로 만들어버리는 뻥 크로스를 계속 봐야 하는가.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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