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용의 화식열전] 경제 살리고 홍콩반환 이룬 장쩌민…시진핑은?
자본주의·공산당 ‘공존’ 이뤄
胡와 권력다툼…習 어부지리
중국의 再독재화에 징검다리
춘추시대 초강대국 진(晉)의 전환점은 도공(悼公) 때다. 앞선 영(靈)·성(成)·경(景)·여(厲) 네 명의 군주가 단명하거나 신하들에게 쫓겨났다. 신하들에 의해 옹립된 도공이지만 선정으로 진은 마지막 전성기를 맞이한다. 도공은 29세에 갑자기 요절하면서 권력은 신하들 차지가 된다. 이 때 실권자로 급부상한 이가 사개(士丐)다. 춘추좌씨전에는 범선자(范宣子)로도 불린다.
노(魯)에서 현명하다고 소문난 숙손표(叔孫豹)가 진에 사신으로 왔다. 범선자가 만남을 청해 묻는다.
“죽은 후에도 썩지 않는다(不朽)는 말이 있는데, 참 뜻이 무엇입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숙손표는 답을 머뭇거린다. 범선자가 말을 잇는다.
“우리 가문이 수 천년 이상 제사를 이어왔는데, 이게 불후 아닐까요?”
범선자의 뜻을 간파한 숙손표가 답한다.
“대대로 제사가 끊기지 않는 것은 어느 나라에도 다 있는 일입니다. 큰 복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불후는 아닙니다. 최상의 불후는 덕(德)을 세우는 것이며, 그 다음이 공(功)을 세우는 것이고, 그 다음에 세상에 말을 남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가문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집 마다 가묘(家廟)가 있을 정도다. 가문은 나라로 확장된다. 당시 사개는 가문의 영구집권을 꿈꿨는지 모른다. 권력욕의 정점이 세습이다. 전국을 통일한 진왕(秦王) 정(政)이 처음(始)이란 뜻으로 시황제를 자칭한 것도 권력의 영원한 세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불후의 뜻을 물은 범선자를 끝으로 사씨 가문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시황제의 뒤를 이은 호해(胡亥)는 ‘이세(二世)황제’를 칭했지만, ‘삼세’도 가지 못하고 망한다.
“강택민 동지 영수불후(江澤民 同志 永垂不朽) ”
11월30일 장쩌민 주석의 별세 소식을 전하는 중국 CCTV 방송의 제목이다. ‘영수불후’는 중국에서 이름 있는 이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붙이는 관용구다. 마오쩌뚱(毛澤東)과 덩사오핑(鄧小平)을 비롯해 공산당 원로들이 사망할 때도 붙었다.
장쩌민 주석은 현대 중 정치사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 이전에는 ‘대장정’을 이룬 혁명원로들이 권력을 나눠가졌다. 이른바 공신(功臣)의 시대였다. 덩샤오핑의 후계로도 혁명세력인 리펑(李鵬)이 유력했지만, 승자는 지방에서 경제부문에서만 경력을 쌓은 장이었다.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덩이 장을 내세워 원로들을 견제하는 일종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한 셈이다.
장은 정치는 공산주의, 경제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모델을 현실로 구현한 인물이다. 1989년 천안문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하며 권좌에 올랐지만 집권기간 내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뤄내며 ‘인민의 삶’을 개선시킨다. 대중은 먹고 사는 문제가 일단 나아지면 독재에 관대해지기도 한다.
덩 사후 장은 ‘상하이방(上海幇)’이란 새로운 세력을 구축하며 권력을 다진다. 공산당에 자본가들을 가입시킨다. 새로운 지배세력을 만든 셈이다. 2002년 ‘칠상팔하(七上八下)’라는 암묵적 불문률도 만든다.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을 선출할 때 만 나이가 67세면 취임할 수 있지만, 68세면 퇴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라이벌 차오스(喬石)를 견제하는 장치였지만 권력의 노후화를 막고 세대교체를 자극한다는 명분도 가질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독재를 막는 이 장치는 국내에서는 은행지주회사들이 회장 연임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했다. ‘정치화’ 되어버린 은행지주회사 지배구조의 단면이 드러나는 셈이다.
장 역시 2002년 공산당 총서기, 2003년 국가주석을 후진타오(胡錦濤)에 넘겨주고 물러났지만 진짜 핵심권력인 당 군사위 주석에서 물러난 것은 2004년이다. 그의 측근인 상하이방 인사들을 후 주변에 포진시킨 후에야 군권을 물려 준 셈이다.
장와 후의 갈등으로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은 게 시진핑(習近平)이다. 후는 후임으로 같은 ‘공산주의청년단(共靑)’ 계열인 리커창(李克强)을, 장은 상하이방을 밀었다. 이 때 상하이방과 손을 잡은 게 혁명원로들 자제로 구성된 ‘태자당(太子黨)’이고 대표인물이 보시라이(薄熙來)다. 보가 부패로 몰락하며 대안으로 급부상한 이가 시다. 오늘의 시를 만든 주인공이 장인 셈이다.
덩은 일찌감치 장의 독재를 우려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1992년 후를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발탁해 장의 후임으로 낙점했다는 게 정설이다. 장이 이를 피해 막후에서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 후와 다툰 결과 시진핑이 집권하게 된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에 장은 더 이상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상하이방도 부패 혐의와 세대교체 실패 등으로 힘을 잃는다.
권력 다툼의 뒷얘기 보다 세상의 주목을 받을 장의 업적은 경제성장과 홍콩 조기 반환이다. 중국의 글로벌 경제질서 편입으로 전세계는 30년 간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홍콩 반환은 1860년 아편전쟁으로 몰락한 중국의 치욕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다. 장에게는 불후의 업적일 수 있다. 얼마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장은 1926년 동갑내기다.
종신집권을 꾀하는 시는 아마 장을 넘어서는 ‘불후’를 추구할 지 모른다. 미국을 넘어 세계의 패권국가가 되는 것과, 대만과의 통일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와 홍콩의 중국화는 그 증거다. 장의 업적은 그래도 중국이 세계 질서에 동참하는 모양새였지만 시가 가는 길은 그 반대인 듯하다.
세상을 떠난 장에 대한 중국인들의 평가가 반시진핑 여론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장은 그래도 ‘인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는’ 확실히 해결한 반면 시는 경제도 어려운데 독재만 강화한다는 비교가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가장 큰 경제적 이익을 얻은 나라 중 하나다.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요즘 다들 미국이나 유럽 얘기로 중국에 대한 관심이 좀 부족한 듯 하다. 중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질 때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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