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백지시위’ 후 장쩌민 추모 정국에 쏠린 눈···“시 주석의 딜레마”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사망이 중국 정치와 코로나19 봉쇄 반대 시위 국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계기로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장 전 주석이 그 이후 최대 규모로 평가되는 전국적 시위가 열린 미묘하고도 중요한 순간에 세상을 떠났다는 평이 나온다.
시진핑 장례위원장 맡아 예우…‘상하이방’ 이미 와해, 권력 관계 영향 없을 듯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주임위원(위원장)으로 하는 장 전 주석 장례위원회는 오는 6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중앙군사위원회가 ‘장쩌민 동지 추도대회’를 거행한다고 1일 밝혔다. 또 추도대회 당일 전국 각 지역과 재외공관 및 기타 재외기구는 조기를 게양하고 공공오락 활동을 멈추며, 추도대회 묵념 때는 전 국민이 3분간 묵념을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장례위는 별도로 유체고별식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장례위는 앞서 장 전 주석 사망 당일인 지난달 30일 공고를 통해 장 전 주석 추도대회가 열리는 날까지 톈안먼(天安門) 광장과 인민대회당, 외교부와 재외공관 등에 조기를 게양하며 홍콩·마카오 연락판공실 및 재외공관에 빈소를 마련해 주재국의 조문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관례에 따라 외국 정부나 정당 대표 등의 추모행사 참석 초청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장 전 주석의 장례는 7일장으로 1997년 덩샤오핑(鄧小平), 1998년 양상쿤(楊尙昆) 전 국가주석 장례 때와 같은 일정이다. 추도대회에서는 장례위원장인 시 주석이 추도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 명보는 중국이 장 전 주석에 대해 덩샤오핑 사망 때와 같은 국가적 예우를 갖추고 있는데 이는 그가 가진 정치적 영향력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의 죽음을 성대하게 기리는 것이 현 지도자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전날 ‘전당, 전국, 전국 각 민족 인민에게 고하는 글’이라는 형식으로 장 전 주석의 부고를 전했다. 중국 공산당 창당 이래 이런 형식의 부고가 나온 것은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 사망 때 뿐이었고, 장 전 주석의 부고는 앞선 두 지도자 사망 때보다 더 길었다.
장 전 주석은 중국의 제3세대 지도자이자 공산당 내 3대 파벌 가운데 하나인 ‘상하이방’의 수장이다. 하지만 시 주석 집권기 정치적 숙청을 통해 상하이방 자체가 사실상 와해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의 사망이 내부 권력 관계에 특별한 파장을 가져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커우젠원(寇健文) 대만 정치대 교수는 “시진핑은 이미 10년 동안 집권했고 최고위 교체가 완료됐기 때문에 내부 엘리트들이 기회를 노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그의 장례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이끄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천단) 세력의 몰락과 함께 1인 권력이 더욱 공고해진 온전한 ‘시진핑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억될 수 있다. 그의 죽음에 대해 ‘한 시대의 종말’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백지시위’ 영향 촉각…온라인 추모·불만 표출, 현실선 한계
정치 세력 내부의 파장은 크지 않지만 장 전 주석이 매우 절묘한 시점에 세상을 떠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죽음 속에서도 그의 타이밍은 완벽했다’고 평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공산당 최고지도자가 됐던 그의 사망 소식이 장기간의 고강도 방역 조치로 쌓여온 대중의 불만이 ‘백지 시위’로 표출된 시점에서 전해졌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주말 동시다발적 시위가 일어난 후 당국이 시위 통제와 경계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 전 주석 추모 정국이 분노한 민중에 탈출구나 해방구를 열어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뉴욕타임스는 “시 주석이 장 전 주석을 어떻게 추모할지 딜레마에 빠졌다”면서 “장 전 주석에게 애도와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그 추모가 현 체제를 위협하는 ‘상징적 곤봉’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앞으로 몇 주 동안 시 주석이 직면한 새로운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현대사에서는 타계한 지도자의 추모가 대규모 대중 저항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1989년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의 죽음은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최고지도자로 급부상한 이가 바로 장 전 주석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76년에 사망한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 추모 정국이 ‘4.5 운동’으로 불리는 1차 톈안먼 사태로 번진 적도 있다. 폴리티코는 “시 주석에게 역사적 메아리는 이보다 더 불길할 수 없다”며 “당이 전직 최고지도자에 대한 애도나 추모를 막을 수는 없으며 앞으로 며칠 혹은 몇 주 동안의 추모는 현재 중국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는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장 전 주석에 대한 추모 열기가 끌어오르며 이를 우회적인 정치적 의사 표현의 기회로 삼는 기류도 나타난다. 전날 관영 CCTV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웨이보(微博)에 올린 장 전 주석 부고 기사에는 1시간 만에 50만개 넘는 추모 댓글이 달렸다. 누리꾼들은 ‘그의 시대는 가장 번영했던 시대는 아니지만 비교적 관대했던 시대’라거나 ‘그에 대한 비판을 많이 들었지만 그가 비판의 목소리를 허용했다는 사실은 칭찬받을 만하다’며 우회적으로 정치적 불만을 표출했다. SNS에는 장 전 주석 사망 후 ‘네가 아니어서 아쉽다’와 같은 노래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이것이 시 주석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온라인을 넘어 거리 시위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당국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면 방역 등을 이유로 거리에 추모 행렬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틀어막을 가능성이 높다. 윌리 워 랩 람 제임스타운재단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시 주석의 강력한 보안망 하에서 1989년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며 장 전 주석의 죽음이 중국 정치에 별다른 파급 효과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역사학자인 장리판(章立凡)은 시 주석이 오히려 장 전 주석 추모행사를 자신의 고립 상황을 타개하는 데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것이 6월4일(톈안먼 사태)의 악몽에서 벗어나게 할지 아니면 되살리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