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필 충주시농아인협회 운영위원장, "몸이 다할 때까지 농아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고 싶다"

진광호 기자 2022. 12. 1. 16:2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장재필(73·사진) 충주시농아인협회 운영위원장은 봉사에 임하는 마음을 이렇게 정의했다.

남들은 1년도 힘들다는 충주시농아인협회 운영위원장을 10년 넘게 열정적으로 맡고 있는 장 위원장은 수준급 수화실력으로 농아인들과 소통하며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70을 넘은 나이에도 농아인 손발 역할
10년 넘게 운영위원장 맡아 농아인들의 세상 소통 창구 역할
충주시장애인체육회 창립 주도
충주시 최초 농아인 경로당 '농아인 쉼터'지킴이 역할 톡톡
마지막까지 농아인들 위한 봉사 각오
장재필 충주시농아인협회 운영위원장.  사진=진광호 기자

[충주]"아들 삼형제를 키웠던 마음 그대로"

장재필(73·사진) 충주시농아인협회 운영위원장은 봉사에 임하는 마음을 이렇게 정의했다. 경북 포항이 고향인 장 위원장은 경찰인 남편을 만나 충주에 정착하게 됐다. 그의 봉사활동은 지역의 중증 장애인 요양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1995년부터 시작했다.

장 위원장은 "아이들을 키워놓고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다가 문득 중학교 시절에 봉사했던 좋은 기억이 떠올라 나눔의 집을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됐다"면서 "막상 몸이 불편한 중증장애인들을 보니 무엇이든 해야 된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목욕, 김장 등을 가리고 않고 도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장 위원장은 봉사 활동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 한 켠에는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당시 만해도 사회적 편견과 열악한 인프라 등으로 안 그래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더욱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토대를 마련해 주고 싶었고 이는 충주시장애인체육회 출범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장 위원장은 "장애인들이 체육활동이 너무 비 장애인과 차별이 심했고 운동에 관심이 많고 장애인 대회를 참가하려 해도 제대로 지원이 되지 않았다"며 "시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에게 장애인체육회 필요성을 강조했고 다행히 시에서 적극적으로 추진에 나서 장애인체육회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잘 듣지 못해 언어 구사가 힘든 농아인들에게 세상과의 소통 통로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남들은 1년도 힘들다는 충주시농아인협회 운영위원장을 10년 넘게 열정적으로 맡고 있는 장 위원장은 수준급 수화실력으로 농아인들과 소통하며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 2010년 세상 밖으로 나오기 힘들어 하던 농아인들을 위해 문화동에 충주시 최초 농아인 경로당인 '농아인 쉼터'를 여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또 원활한 운영이 위해 매일 찾아가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장 위원장은 앞으로 계획에 대해 "어차피 몸이 다할 때까지 농아인들을 위해 봉사할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최대한 오랫동안 함께 했으면 좋겠다"면서 "장애인들이 더 이상 차별 받지 않고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 장 위원장의 인생 황혼기 봉사인생이 더욱 기대된다.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