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이철수씨 구명…김대중 비서실장도

김경애 2022. 12. 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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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체류 시절 재미동포 사형수 이철수씨 구명에 적극 나섰고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유재건 전 의원이 1일 오전 9시24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난 고인은 연세대 정외과와 대학원을 나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7년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인은 1977년에 아시안 커뮤니티와 함께 '이철수 구명위원회'를 결성하고 사건을 재조사해 무죄 평결에 이은 사형판결 무효화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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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지낸 유재건 전 의원 별세
고 유재건 전 의원. 유족 제공

미국 체류 시절 재미동포 사형수 이철수씨 구명에 적극 나섰고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유재건 전 의원이 1일 오전 9시24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5.

서울에서 태어난 난 고인은 연세대 정외과와 대학원을 나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77년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89년 미국 연방정부 지역사회변호사로 일했고, 1982∼90년 엘에이(LA)에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했다. 고인은 1977년에 아시안 커뮤니티와 함께 ‘이철수 구명위원회’를 결성하고 사건을 재조사해 무죄 평결에 이은 사형판결 무효화를 이끌어냈다. 이씨는 1973년 샌프란시스코 갱단 간부 1급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복역 중이던 1977년 교도소에서 백인 갱단의 공격에 맞선 정당방위 살해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고인은 이씨의 무죄를 확신하고, 사건의 7가지 위헌적 재판 절차를 밝혀냈고, 1983년 이씨는 석방됐다. 고인은 2009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소수민족 연대 승리였던 사건 기록을 담은 책 <함께 부르는 노래>를 펴내기도 했다.

1990년 귀국해 <시사토론>(MBC), <심야토론>(KBS 1TV) 진행자로 활동한 그는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원외 부총재로 임명됐다. 1996년 15대 총선 때 지역구(서울 성북갑)에서 당선된 뒤 16대·17대 연이어 뽑혔다. 1997∼99년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2009년부터 한국유스호스텔연맹 총재, 2021년 세계유네스코협회연맹 회장, 최근까지 국제구호단체 희망의다리 이사장을 지냈다.

유족은 부인 김성수씨, 아들 수화·대현씨, 딸 승영씨, 사위 박의섭씨, 며느리 홍애선·김유강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5일 오전 6시30분 예정이다. (02)3410-6917.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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