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사망, '톈안먼 기억' 中 일반인 조문·추모 허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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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사망에 대한 중국 내 애도의 물결이 현 체제 불만 표출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한 시 주석 체제에서 장쩌민은 세상을 떠나기 전부터 국민들에게 소탈한 아저씨 이미지의 향수로 중국 사회에 존재했다.
중국 공산당이 시 주석을 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를 꾸리고 1976년 마오쩌둥, 1997년 덩샤오핑이 각각 사망했을 때와 같은 형식으로 부고를 알린 것은 장쩌민의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방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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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 조문 혹은 추모 공간에 대한 공지는 없어
- 1989년 톈안먼 사태도 후야오방 사망으로 추모객 몰리면서 폭발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사망에 대한 중국 내 애도의 물결이 현 체제 불만 표출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989년 톈안먼 사태도 후야오방 총서기의 사망에서 촉발됐다. 중국은 시민이 모일 수 있는 일반인 조문이나 추모를 위한 장소 공지를 하지 않고 있다.
장쩌민 타계 소식은 전날에 이어 1일에도 중국 소셜미디어(SNS)의 주요 검색어에 올랐다. 네티즌들을 고인을 ‘장할아버지’, ‘어르신’. '위인‘ 등으로 칭하며 애도하고 있다.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한 시 주석 체제에서 장쩌민은 세상을 떠나기 전부터 국민들에게 소탈한 아저씨 이미지의 향수로 중국 사회에 존재했다.
네티즌들은 장쩌민을 ‘두꺼비 숭배’ 놀이로 희화화하기도 한다. 이는 시 주석 정권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더스탠더드는 “일부는 장 전 주석의 죽음을 시 주석에 대한 은근한 비판의 기회로 삼는다”고 소개했다.
누리꾼들이 자신을 ‘하쓰’(두꺼비 팬)라고 칭하고 장쩌민을 ‘어르신’이라고 부른 것은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명보는 전했다.
일각에선 장쩌민의 사망이 최근 중국에서 일고 있는 제로코로나 반대 '백지 시위'를 자극할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는 직전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이 도화선이 됐다. 후야오방은 1982년 총서기직에 올라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꼽혔으나, 1986년 발생한 학생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했다.
이후 1989년 4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고, 추모를 위해 시민들이 모이는 공간이 마련되면서 같은 해 6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백지 시위도 당초 신장위구르 우루무치 화재 사망자 추모였으나 제로코로나 반대, 중국 공산당·시진핑 주석 퇴진으로 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장쩌민 추모를 명분으로 모인 인파가 그대로 시 주석 정권과 공산당에 대한 반대로 확산될 폭발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국가적 예우를 먼저 갖춘 정부가 일반 시민의 추모 혹은 조문 발길을 막기도 사실상 쉽지 않다.
장례준비위원회가 전날 제1호 공고령을 통해 조문을 받는다고 하면서도 재외공관과 홍콩중앙연락판공실, 마카오중앙연락판공실 등으로 한정하며, 일반인 조문 가능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고민이 담긴 것으로 이해된다. 아예 결집의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톈안먼의 경우 5일 고인의 시신을 화장한 뒤 6일 국장 격인 추도대회까지 조기를 게양한다고만 장례위는 밝혔다.
현재 텔레그램 등 중국 정부의 손이 미치지 않는 해외 SNS 단체방에는 “오늘 우리 모두 거리로 나가 국화꽃을 들자”거나 “단속이 강화될 것 같으니 당분간 주의하자”는 글이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톈안먼 유혈 진압의 여파를 수습하며 일인자가 된 장쩌민 역시 공산당 일당 권위주의 체제의 충실한 계승자라는 한계도 상존한다.
중국 공산당이 시 주석을 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를 꾸리고 1976년 마오쩌둥, 1997년 덩샤오핑이 각각 사망했을 때와 같은 형식으로 부고를 알린 것은 장쩌민의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방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명보는 “(고인이 가진) 작금의 중국 정계 영향력이 이미 사라진 터라 그를 성대하게 기리는 것이 현 지도자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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