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비용 줄게요, 노인 돈 걷어서” [왕개미연구소]
[왕개미연구소]
“일본의 미래를 위해 노인들은 사라져야 한다... 노인들이 젊은층에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다.” 고령자를 향한 혐오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고 민심이 흉흉하다. 일본 정부가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자발적 안락사를 권유하는 ‘플랜75’를 공표한다. 처음엔 반발이 거세지만, 초고령화 해결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결국 국민들은 수용 모드로 변한다.
‘플랜75’에 참여한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위로금은 10만엔(약 95만원), 단체플랜을 선택하면 무료 장례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무원들은 무료해 보이는 노인들에게 다가가 ‘플랜75’ 가입을 독려한다.
지난 6월 개봉된 일본 영화 ‘플랜75’는 그리 머지 않은 일본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세대 간 이해 관계가 매섭게 충돌하는 어두운 현실을 담았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아가는 78세 여주인공은 고령이라는 이유로 청소부로 일하던 호텔에서 해고당한다. ‘가족에게 피해주고 싶지 않다’면서 그는 정부가 권하는 제도화된 죽음 앞에서 고뇌한다.
영화 얘기라고만 넘기기엔 주제와 분위기가 섬찟하다. 지난 10월 출간된 책 ‘대한민국의 붕괴’는 영화를 두고 이렇게 분석한다. “일본 영화 ‘플랜75’는 노인 부양과 세대 갈등으로 인한 인구 문제가 일본의 산업 붕괴는 물론, 총체적인 사회 문제로 증폭되고 있는 현상을 풍자했다. 일본에 비해 출산율이 더 빠르게 하락하는 대한민국은 일본보다 더 가파르게 경기침체, 고령화가 진행될 것이다.”
일본은 2025년, 국민 5명 중 1명이 75세 이상인 노인대국이 된다. 25개월쯤 남은 셈이다. 지난 9월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인구추계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는 올해 3627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울 전망이다. 75세 이상 노인은 1937만명으로,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처음으로 15%를 뚫었다.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일본은 올해 처음으로 출생아 수가 80만명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마쓰노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올해 1~9월 태어난 출생아 수는 60만명에 못 미치는 59만9636명으로 역대 최저치”라며 “위기적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좀처럼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 열린 일본 정부 주도의 ‘전세대형사회보장구축본부’ 회의에서는 고령 세대가 현역 세대를 도와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1일 후지TV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고령화보다 저출산을 더 심각한 문제로 보고, 출산 가정의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42만엔(약 400만원)인 출산 축하금은 47만엔으로 인상할 계획이다. 또 프리랜서나 자영업자 등이 출산·육아 때문에 일을 쉬는 경우에도 재정적인 지원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막대한 재원 마련을 둘러싸고서는 논쟁이 뜨겁다. 정부가 재원을 세금이 아니라, 고령자 건강보험료 인상을 통해 대응할 작정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75세 이상 고령자의 건보료를 인상해 저출산 해결 재원으로 쓰자는 것이다. 또 단기근로자나 자영업자가 출산이나 육아로 쉬게 되면, 직장인 고용보험을 증액해서 충당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현역 세대가 고령 세대의 노후를 부담하는 것처럼, 고령 세대가 현역 세대의 부담을 나눠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이 같은 정부 정책 방향에 반발이 거세다. 후지TV 뉴스 영상을 본 일본 네티즌들의 댓글은 이렇다.
나 혼자 사는 것도 힘든데, 출산은 무리다. 출산은 집이 원래 유복한 가정의 특권. 아니면 앞뒤 생각없는 사람들이 무계획적으로 저지르는 것이다.
애 낳고 들어갈 돈을 생각하면, 그냥 안 낳고 생활하는 편이 QOL(삶의 질) 유지에 좋다. 이런 나라에서 앞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불쌍하니까, 차라리 저출산 국가가 되어 피해자가 줄어드는 편이 낫다.
우리나라의 출산율 저하는 무슨 짓을 해도 멈추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멈추지 않아도 되니까, 제발 우리에게 부담만 오지 않게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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