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억 않는 중국 ‘애국기자’의 죽음

한겨레21 입력 2022. 12. 1. 13:03 수정 2022. 12. 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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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만보]전 <환구시보> 기자 푸궈하오,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취재 중 폭행사건으로 영웅 돼
중국 내 홍콩 향한 여론 반전에 역할… 최근 ‘갑작스러운 죽음’엔 정부·언론 침묵
푸궈하오가 2019년 8월13일 홍콩의 첵랍콕 국제공항에서 반중 시위대에 둘러싸여 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 기자로 취재를 나온 그는 “홍콩 경찰을 사랑한다”는 티셔츠를 가지고 있다가 시위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연합뉴스

그는 한때 ‘영웅’이자 ‘진짜 사나이’ 그리고 ‘애국기자’로 불렸다. 이 모든 영예로운 호칭은 그의 나이 불과 28살 때 ‘얻었다’. 보통 사람들은 인생의 도약을 준비해야 할 나이에 그는 이미 너무 멀리, 너무 높이 올라가버렸다. 준비된 축제에 흥을 돋우기 위해 순식간에 부풀려져서 하늘로 쏘아 올린 초고속 열기구처럼, 그는 한동안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성을 들으며 하늘 위를 둥둥 떠다니다가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뒤 그의 소식을 듣거나 궁금해하는 이는 없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축제를 준비하고 초대할 새 영웅을 물색했다. 그에 관한 소식이 느닷없이 들려온 건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2년 11월17일 밤이었다.

“저명한 애국애항(愛國愛港·중국과 홍콩을 사랑하다) 기자 푸궈하오가 2021년 10월25일 밤에 병으로 숨졌습니다. 사망 당시 나이는 30살. 영웅기자 푸궈하오의 유골은 2022년 5월 이미 톈진 공동묘지에 안장됐습니다. 묘비에는 ‘무한추석’(無限追惜·매우 애도하고 그리워하다)이라는 네 글자를 크게 새겨놓았습니다.”

1년이나 지난 ‘난데없는 부고’

11월17일 저녁 7시34분, 중국 사회관계망에 ‘푸궈하오 부친’이라는 사용자명으로 난데없는 ‘부고’가 올라왔다. 죽은 지 1년이 넘어서야 전해진 푸궈하오의 부고는 어딘가 괴이했다. ‘푸궈하오 부친’은 왜 아들의 사망 소식을 1년도 더 지나서야 공개했을까. 푸궈하오의 부고 소식은 곧바로 중국 사회관계망 곳곳에 퍼져나갔다.

중국의 대표적 인터넷 매체 <펑파이뉴스>는 그의 부고를 짧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때 온갖 언론에서 중국인의 ‘영웅’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추앙됐던 ‘애국기자’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과 그 내막을 자세히 보도하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이 역시 괴이하고 의아했다. 28살 건장한 청년이 불과 2년 뒤 갑자기 ‘병사’한 것은 더더욱 괴이하고 의아했다.

중국 내 무관심한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대만과 홍콩의 언론은 푸궈하오의 부고를 비교적 비중 있게 다뤘고, 홍콩 경찰대원들은 그를 추모하는 성명도 발표했다. 열기구를 타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하늘 위로 둥둥 떠올랐던 28살 ‘애국기자’ 푸궈하오는 왜 갑자기 죽음의 나락으로 추락했을까.

2019년 8월13일, 홍콩의 첵랍콕 국제공항은 아수라장이었다. 그해 3월부터 홍콩에서는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개정안)를 둘러싸고 시민들의 대규모 반대투쟁이 한창이었다. 당시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중국과 대만, 마카오 등 기존에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과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범죄인 인도 조례’를 추진하려 했다.

발단은 2018년 대만에서 일어난 홍콩인 남성의 여자친구 살해 사건이었다. 남성은 대만에 체류하던 중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망쳤지만, 홍콩과 대만 사이에는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범인을 처벌할 방법이 없었다. 홍콩 정부는 이 사건을 빌미 삼아 대륙, 대만, 마카오 등과 ‘범죄인 인도 조례안’을 마련하려 했다. 하지만 대다수 홍콩인은 그 조례안이 홍콩 내 민주화운동 인사나 반중 활동가를 언제든지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며 반발했다. 3월 말 시작된 송환법 반대 시위 열기는 6월 이후 한층 더 격화됐고 시위 양상도 점점 더 노골적으로 반중국 성향을 띠었다.

홍콩 정부가 시위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자 위기를 느낀 중국 정부는 그해 7월과 8월 초에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홍콩 정부에 ‘폭도를 강력하게 진압할 것’을 주문했다. 급기야 시위대는 8월9일부터 국제공항 앞에서 여행객을 대상으로 시위의 정당성을 알리는 농성을 했다. 8월12일 한 여성이 경찰이 쏜 고무탄에 오른쪽 눈을 맞아 실명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공항 농성을 하던 시위대는 입국장 전체를 점거하며 격렬한 반정부 투쟁에 들어갔다. 푸궈하오 사건이 터진 때는 공항 점거 시위가 절정에 이르던 8월13일 저녁이었다.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나를 때려도 된다!”

당시 푸궈하오는 관영매체 <환구시보>가 파견한 특별 취재기자 신분으로 홍콩 시위를 취재했다. 경찰의 폭력적 진압으로 공항 내 시위대 분위기는 다소 격앙돼 있었다. 자신을 사찰하거나 사찰한다고 의심되는 이른바 ‘스파이’가 눈에 띄면 현장에서 색출해 구타하기도 했다. 그러다 푸궈하오가 시위대 눈에 띄었다.

공항 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시위대의 얼굴 근접 사진을 찍고 다니던 푸궈하오에게 신분을 묻자 그는 ‘관광객’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그는 스파이로 의심받았다. 시위대는 푸궈하오의 물품을 압수해서 신분증과 명함을 찾아냈고 ‘나는 홍콩 경찰을 사랑한다’고 쓰인 티셔츠도 발견했다. 푸궈하오는 관광객이 아니라 중국 대륙에서 파견한 <환구시보> 기자라는 게 밝혀졌다. 다른 매체도 아니고 홍콩인이 가장 싫어하는 중국 관영매체 기자 신분이라는 게 드러나자 시위대는 그의 손을 묶고 구석으로 끌고 가려 했다. 그 과정에서 푸궈하오는 자신과 시위대 주변에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을 찍는 카메라가 있다는 걸 본 뒤 갑자기 시위대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나중에 <중국중앙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본인이 직접 말한 내용임)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그러니 너희는 나를 때려도 된다!”

푸궈하오의 말에 더 격분한 시위대가 그의 얼굴과 머리를 때렸다. 푸궈하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묵묵히 온몸으로 폭력을 받아들였다. 그가 시위대에게 구타당하는 모습은 그날 밤 중국 전역에 긴급뉴스로 보도됐다. 공항 내 전후 맥락은 생략된 채, 중국의 대표 관영매체 기자가 시위대에게 둘러싸여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는 장면만으로도 파급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컸다. 홍콩 ‘폭도들’을 향한 중국 내 여론이 들끓었고, 선전에서 대기하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투입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중국 언론도 발 빠르게 움직이며 홍콩 시위대를 압박하는 분노 여론을 대대적으로 조성했다.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인 8월14일치 <인민일보>와 푸궈하오의 소속 매체 <환구시보>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 푸궈하오를 ‘영웅’으로 미화했다. <인민일보>는 ‘푸궈하오, 진짜 사나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를 ‘불굴의 기개를 가진 진짜 사나이로, 당당한 중국인이 마땅히 갖춰야 할 모습을 보인 영웅’이라고 펜이 마르고 닳도록 칭송했다. <환구시보>도 8월14일 새벽 인터넷판에서 ‘푸궈하오는 우리 회사 기자이자 영웅이다. 기자를 구타하면서 어찌 언론자유를 주장하고 평화시위를 벌인다고 떠벌릴 수 있는가!’라며 홍콩 시위대의 ‘폭력성’을 정조준해 보도했다.

중국 내 인터넷에서도 푸궈하오를 ‘애국기자’ ‘영웅’으로 불러대는 무수한 열혈 애국주의자의 추앙가가 흘러넘쳤다. 그는 <중국중앙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다행히 얼굴과 머리에 간단한 멍과 타박상만을 입었을 뿐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홍콩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중국중앙텔레비전>의 유명 아나운서 둥첸은 감동해서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다.

홍콩 폭행사건 뒤 남은 건, 우울증과 빈곤

푸궈하오 사건 이후 홍콩 시위대를 향한 중국 내 여론은 급반전했고, 중국 정부는 이후 홍콩 내 반정부 활동 세력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인 ‘홍콩 보안법’을 은밀히 준비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20년 7월1일을 기점으로 역사적인 ‘홍콩 보안법’ 시행이 발표됐다.

‘영웅’이자 ‘애국기자’였고 ‘진짜 사나이’로 불리던 푸궈하오는 그 뒤 어떻게 됐을까. 그는 한동안 관방매체와 인터넷 등에서 영웅으로 추앙되는가 싶더니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2020년 4월, 그의 아버지와 당시 <환구시보> 편집장이던 후시진의 소셜네트워크에서 들려온 소식은 푸궈하오가 <환구시보>를 사직하고 병원에서 요양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드러난 사실 중 하나는 푸궈하오가 <환구시보>의 정식 기자가 아니라 임시직이었고, 홍콩 공항 사건 이후에도 정식 기자로 발령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푸궈하오에 대해 아는 사실과는 많이 달랐고,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모두가 다 관방매체에서 ‘주입한’ 정치적 선전 내용이었다.

2022년 11월17일 밤, 사회관계망으로 그의 뒤늦은 부고를 냈던 푸궈하오 부친은 다음날인 18일 그와 관련한 ‘후속편’을 올렸다. 부친이 올린 게시물에 따르면 푸궈하오는 2019년 8월13일 홍콩 국제공항 사건 이후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하루아침에 국민영웅과 애국기자가 되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자유롭지 못했고 수많은 협박 전화와 인터넷 폭력에 시달렸다. 그는 휴대전화 번호를 자주 바꿔야 했고, 늘 누군가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에 긴장하며 살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죽어서도 국가 이익 해칠 수 없는 기자

<환구시보>에 임시직으로 입사한 뒤 푸궈하오가 받은 월급은 5천위안(약 90만원) 정도였고, 베이징에 있는 회사 근처에서 얻은 가장 싼 방의 월세가 월급보다 더 많은 6천위안(약 100만원)이었다. 월급을 웃도는 월세와 식비, 교통비, 기타 잡비는 모두 다 부모님이 메워줘야 했다. 그는 항상 적자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2019년 8월13일 이후 ‘저명한 영웅’이 된 뒤에도 푸궈하오의 적자 인생은 달라지지 않았다. 감시 같은 주변의 시선과 관심 그리고 인터넷 폭력까지 덤으로 얹어 살다가 급기야 그는 우울증을 앓았다. 푸궈하오의 부고를 접한 ‘전문가’들은 그가 단순히 우울증을 앓았다기보다는, 2019년 8월13일 홍콩 공항 사태를 겪은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렸을 것이라고도 분석한다.

푸궈하오가 왜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는 부친 외에 구체적으로 아는 이가 없다. 뒤늦은 부고를 왜 올렸냐는 시선에 대해 부친은 이렇게 밝혔다. “나와 우리 가족은 절대 개인적인 이유로, 그것이 설사 생사가 걸린 문제일지라도, 국가의 이익과 이미지를 해치는 짓은 절대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푸궈하오가 왜 우울증으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죽어서도 ‘국가 이익과 이미지를 절대 해쳐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음은 틀림없다. 그래서일까. 2019년 8월13일 이후 그를 온갖 미사여구로 칭송하던 중국 언론과, 그를 ‘팔아서’ 홍콩 보안법 제정과 애국 장사에 성공했던 중국 정부는 아주 괴이하고 의아할 정도로 그의 뒤늦은 부고에 침묵하고 있다. 대신 생판 모르는 외국인인 내가 푸궈하오의 부고에 애도를 표하는 바다. 1991년 톈진에서 태어나 2021년 10월25일에 생을 마감한 ‘애국기자’여, 부디 영면하시라.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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