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가’ 출신인 원희룡 장관은 왜 “노조혐오자”가 됐을까
2014년 제주도지사 재임 시절 인터뷰에
“구로공단, 인생 최고 대학” 꼽으면서도
“폭력적인 투쟁방식 고민···전향은 아냐”
지난해 민주노총엔 “기득권” “귀족노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총파업 국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정부 관료는 주무부처의 수장이자 정치인이기도 한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다.
1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원 장관은 총파업 시작일인 지난 24일을 전후로 하루 2~3곳의 현장을 방문하며 파업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앞선 30일에도 원 장관은 오전엔 서울의 한 물류회사에 들러 파업에 따른 수송차질 현황 등을 파악한 뒤, 오후엔 파업으로 콘크리트 타설 등 작업이 중단된 둔촌주공 공사현장에 들러 현장 관계자들로부터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저녁엔 한 방송국의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건설업계 등은 원 장관의 이같은 현장방문이 파업으로 인한 업계의 피해현황 등을 홍보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원 장관은 현장방문 뿐만아니라 일정에 따라선 국무회의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등에 참석하고,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브리핑의 브리퍼(발표자)로 나서거나 세종청사에서 직접 백프리핑을 진행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강행군’이다.
다만 원 장관은 파업을 전후해 화물연대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현장방문도 물류수송차질 등 ‘피해 사업장’에 국한돼있지 파업 집회에 참여 중인 화물연대 조합원을 만난다거나 집행부를 만나 입장을 듣는 등의 일정은 한번도 없었다.
화물연대 향해 “사회주의 국가에도 이런 일 없어”
화물연대를 향한 원 장관의 발언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직접 백프리핑에 나선 원 장관은 30~40분간 목소리를 높여가며 화물연대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 자리에서 원 장관은 “이런 식이면 대화할 필요도 없다”는 말을 시작으로 “유가보조금 지급 재검토하겠다” “민사상 손해배상도 심도 있게 고려 중” “안전운임제 폐지 포함한 다각적 검토 필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하나같이 노조입장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발언들이다.
원 장관은 급기야 화물연대를 향한 이른바 ‘색깔론’적 시각도 내비쳤다. 그는 “안전운임제에 대해 자신(화물연대)의 입맛대로 고정시키고, 맘에 안들면 생산수단 중단시키는데(운송거부하는데) 아무도 책임안지고 이런 것은 전세계 아무 곳도 없다. 사회주의국가에도 이런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백브리핑 도중 “화물연대를 해체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 가능한 발언을 했다가 곧바로 정정하기도 했다. 백프리핑에서 “지나친 강대강 대결 구도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질문이 나오자 원 장관은 “걸핏하면 산업을 세우는 화물운송 종사자, 단체라면 여기를 해체하고 새로운 산업구조를 짜는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화물연대를 해체해야 한다는 뜻인가”라는 질문이 되돌아오자 원 장관은 “현재의 다단계 운송, 자영업자도 노동자도 아닌 것이 걸핏하면 물류를 차단하는 산업구조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화물연대 해체는 아니라고 정정했다.
파업을 전후로 한 원 장관의 행보와 발언 등을 놓고 노동계에선 “노조 혐오”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파업을 진행 중인 화물연대와 2일 파업을 예고한 철도노조는 파업에 나서는 이유 중 하나로 원 장관을 위시한 현 정부의 노조 혐오 시각을 꼽았다. 원 장관의 ‘거친 발언’이 이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노동운동가에서 “노조혐오가”로 비판받기까지
지금은 노동계로부터 “노조혐오자”로 비판받지만 원 장관은 과거 학생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한 전력이 있다. <주간경향>은 2014년 창간기획인 ‘구로공단과의 대화’를 통해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의 인터뷰를 게재한 바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원 장관은 “대학생이 된 뒤 민주주의는 교과서에만 있고 현실에는 없구나 싶었고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학내 서클에 가담하고 시위에 앞장서다가 연행돼서 정학을 맞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어차피 학교도 못 나가는데 이참에 노동현장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나 일반 민중들의 의식이 깨어나 적극적으로 나서야 민주화가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구로공단에 취업했던 이력과 이후 노조결성을 목적으로 인천의 한 공단에 취업한 이력 등을 소개했다. 원 장관은 구로공단을 “인생 최고의 대학”으로 꼽기도 했다.
서울대를 다니며 한때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그가 노동계로부터 ‘노조혐오자’로 비판받을 정도로 변신을 하게 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당시 인터뷰에서 원 장관은 “(노동운동관이 바뀐 것은)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는 게 결정적이었다”며 “폭력적인 투쟁방식에 고민했고, 그래서 얻은 결론이 앞으로는 이념의 절대적인 틀과 집을 짓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에서 원 장관은 “(노동계에서)전향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원 장관은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 후보경선에 출마해 민주노총에 대해 “기득권” “귀족노조” 등의 비판을 일관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이를 근거로 원 장관이 노동운동 자체를 혐오하기보단 민주노총이라는 특정 단체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이 강성발언 등으로 표출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차기 대권을 겨냥한 원 장관의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보수진영에서 민주노총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기 때문에 화물연대에 대해 강경대응하면 할수록 현 정부 입장에서는 지지세력이 결집하는 효과가 있다”며 “원 장관의 경우 현장을 돌며 주무장관으로서 본업에 충실함은 물론, 의도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인지도 상승 및 보수진영 내 이미지 구축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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