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인간의 비루함과 고결함에 대하여

조성관 작가 입력 2022. 12. 1. 12:00 수정 2022. 12. 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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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치 이미지. /사진=Onbuy.com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워털루 이빨'을 아시는지요?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전세계에서 큰 인기를 누린 스웨덴의 4인 혼성그룹 아바(ABBA). 아바의 히트곡들로 만든 뮤지컬이 '맘마미아'다. 또한 아바의 히트곡 중 하나가 바로 '워털루'.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이 재기를 노리며 1815년 6월18일 영국의 웰링턴 장군과 벌였던 전투의 현장.

워털루는 현재 벨기에 중부에 있다. 대영제국은 나폴레옹의 15년 천하를 끝낸 역사적인 승전을 기념해 곳곳에 워털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중 하나가 런던 템스강 변의 워털루 역과 워털루 다리다. 캐나다와 같은 영연방 국가 곳곳에도 워털루가 있다.

그날 나폴레옹 군과 반(反)나폴레옹 연합군은 하루 동안만 5만1000명 이상 전사했다. 때는 유월 중순. 한여름의 초입이라 벌판에 나뒹군 시체들이 썩기 시작했다. 동시에 벌레떼들이 일제히 몰려들어 시체들에 들러붙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윙윙윙' 벌레들의 파티가 벌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사자 식별표를 수거하러 온 병사들이 아니었다.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려는 유가족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군복을 입지 않았다. 그들은 프랑스와 벨기에서 모여든 좀도둑들이었다.

자루를 어깨에 짊어진 도둑들은 눈에 불을 켜고 시체들을 재빠르게 스캔했다. 엎어진 시체들은 발끝으로 뒤집었다. '어디 돈 될 만한 것은 없나.' 어쩌다 목걸이나 시계 같은 것이 보이면 그건 횡재를 맞은 것. 병사들이 전쟁에 나가면서 무슨 소지품을 지녔겠나.

도둑들이 진짜 노린 건 소지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치아였다. 막 썩기 시작하는 시체에서 이를 빼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몇 번만 흔들어도 흐물흐물해진 턱에서 이가 쑥쑥 빠졌다.

당시 유럽의 귀족과 상류층은 틀니를 사용했다. 하지만 의치 제조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죽은 사람의 이로 의치를 제작했다. 당연히 고가에 거래되었다. 지금은 의치를 합성수지로 만들어 누구나 부담 없는 가격에 살 수 있다.

1815년 워터루 전투가 있던 들판 언덕에 세워진 사자상. /사진=구글

워털루 들판의 시체들이 해골로 변했을 즈음 프랑스, 벨기에, 영국에는 갑자기 '질 좋은 의치'가 넘쳐났다. 그걸 '워털루 치아(Waterloo Teeth)'라고 부른다. 젊은 병사들의 '워털루 치아' 덕분에 노인들은 육식의 즐거움을 연장할 수 있었다.

미국 남북전쟁(1861~1865)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전사자들의 시체 구덩이에서 일제히 치아들이 도난당했다. 이 이들은 '워털루 치아'처럼 틀니 제작에 귀하게 대접받았다.

마키아벨리는 언제나 옳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사람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

내가 막 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솔직히 그의 비정한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세상 경험이 일천한 나는 '설마 그렇기까지야'라며 판단을 유보하곤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점점 그의 주장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는 16세기에도 옳았고, 지금도 여전히 옳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과 관련해 남긴 말 중에 이런 어록이 있다.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은 빨리 잊어도, 재산의 손실(chela perdita del patrimonio)은 잊지 않는다."

재산을 남겨놓지 않은 채 부모가 죽으면 자식들은 부모와 얽힌 추억을 회상하며 슬픔에 젖는다. 하지만 부모가 남겨둔 재산이 많으면 겉으론 슬퍼하면서도 속으론 주판알을 튕긴다. 부모의 유산을 놓고 벌이는 형제들의 골육상쟁을 우리는 지금도 도처에서 수시로 목격한다.

탐욕과 비루함은 사촌지간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5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돈에 눈이 먼 백화점 오너의 끝없는 탐욕이 빚은 참사였다. 살려달라는 비명이 난무하는 건물 잔해 속에서 허연 이빨을 드러낸 이리떼가 몰려들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귀금속을 포함한 고가의 물품들이 잔해더미에 묻혔다는 사실에 도둑들이 들끓었다. 실제로 잔해더미 속에서 보석들을 훔쳐 나오는 여인의 미소가 사진기자 카메라에 잡혔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구명보트를 내리고 있는 장면. /사진=네이버 영화

타이타닉호에서 품격을 지킨 사람들

1912년 4월14일 밤 11시40분.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항한 초대형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캐나다 뉴펀들랜드 앞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타이타닉호에는 2208명이 타고 있었다. 칠흑의 밤바다를 항해하던 타이타닉호는 실수로 빙산이 떠내려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거대한 빙산이 여객선을 들이받았다. 타이타닉호는 일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객선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시각은 4월15일 새벽 2시40분.

타이타닉호는 3시간 만에 얼음장 같은 바닷속으로 침몰했다. 내가 110년 전 일어난 비극을 분(分)까지 언급한 것은 그 시간에 배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695명. 영화 '타이타닉'은 충돌에서 침몰까지의 전 과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구명보트의 숫자가 절대 부족했다. 어떤 사람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워 탈출시킬 것인가. 선장은 여자와 아이들부터 승선시킬 것을 지시한다. 여객의 대부분인 영국인들과 미국인들은 여기에 동의했다. 재난 상황에서는 약자인 어린이와 여성들부터 먼저 구출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공유하고 있어서다. 어린이들이 구명보트에 먼저 타자 여성들이 그 뒤를 따랐다.

여객 중에는 소수의 부유한 중국인들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찬물도 순서가 있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유교 사상이 뿌리박혀 있던 중국인들은 어린이와 여성을 먼저 탈출시킨다는 데 동의할 수가 없었다. 체구가 작은 몇몇 중국 남자들이 꾀를 냈다. 여장을 한 채 아비규환의 틈바구니에 부녀자들에 섞여 구명보트에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실이 여객선 안에 쫙 퍼졌다. 죽는 줄 알면서도 탈출을 포기하고 배 안에 남기로 한 남자들은 중국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되었다. 타이타닉호 비극이 있고 나서 한동안 미국에 사는 중국인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한다. 일부 중국 남자들의 비루함과 달리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은 그룹이 있다.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 1등 항해사 윌리엄 모던, 통신사 잭 팰리스, 8인조 바이올린 악단장 월리스 하틀리, 철강 사업가 벤자민 구겐하임, 노부부 이시도 스트라우스 등이다. 스트라우스 부부는 침대에 누운 손을 꼭 잡은 채 죽음을 맞았다.

세계인문여행 151회 <영화 '딥 임팩트'와 헤퍼인터내셔날>.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의 생태계 복원을 돕기 위해 장로교 계열의 비영리단체 '헤퍼인터내셔널'은 우리나라에 젖소, 황소, 염소, 토끼 등 가축과 꿀벌을 공수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꿀벌 150만마리를 싣고 태평양 상공을 비행하는 일. 수송기의 비행 최적 고도는 2.4~2.7㎞. 하지만 그 고도로 비행할 경우 꿀벌의 안전 수송을 보장할 수 없었다. 수송기 조종사와 헤퍼인터내셔널 관계자들은 비행고도를 1.2㎞로 낮추기로 합의한다.

꿀벌 150만 마리가 한국 땅에 무사히 착륙할 때까지 수시로 벌통을 들여다보면 조마조마했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하찮은 꿀벌의 생명조차 귀중하게 여긴 그들의 고결함에 부끄러워진다.

1906년 에드바르트 뭉크가 그린 프리드리히 니체. /사진=위키피디아

백석(白石)의 시 중에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가 있다. 뮤지컬로도 나왔고, 산울림 베이시스트 겸 작곡가 김창훈이 곡을 붙여 노래로도 태어났다.

"눈은 푹푹 나리고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중략)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보니 시인의 마음을 조금 알 것만 같다. 요즘 정치권은 비루한 자들의 난장(亂場)이 되었다. 어쩌다 한국 정치가 이 지경까지 추락했을까.

프리드리히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한 게 1885년. 나온 지 130년이 넘었는데도 울림은 잦아들지 않는다. 이병주부터 장석주까지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이 책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니체는 이 책에서 인생의 거의 모든 철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인간성에 내재한 비루함과 고결함. 서가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꺼내 다시 펼쳐본다.

"인간은 초인과 짐승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나는 지금 그 밧줄의 어디 쯤에 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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