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무참한 권력욕의 종말

2022. 12. 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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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시즌이지만 영화 '올빼미'를 찾는 관객이 많다고 한다.

개봉 8일 만에 100만 명을 넘어 한국 영화로선 모처럼 흥행 성공을 꿈꾼다.

소현세자는 인조 때 병자호란 참패로 청나라에 볼모로 보내져 8년 만에 귀국했지만 두 달여 만에 급서했다.

인조실록에는 학질에 걸렸다고 나오지만, 타살 정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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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논설위원

월드컵 시즌이지만 영화 ‘올빼미’를 찾는 관객이 많다고 한다. 개봉 8일 만에 100만 명을 넘어 한국 영화로선 모처럼 흥행 성공을 꿈꾼다. 이런 인기를 타고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의 의문사가 새삼 관심을 끈다. 독살설 의혹이 여전해 더욱 그렇다.

소현세자는 인조 때 병자호란 참패로 청나라에 볼모로 보내져 8년 만에 귀국했지만 두 달여 만에 급서했다. 인조실록에는 학질에 걸렸다고 나오지만, 타살 정황이 많다. 침을 맞던 34세의 젊은 세자가 돌연사할 때 마치 약물에 중독된 것 같았다는 기록도 있다. 인조가 그를 정적으로 여겼던 것이 결정적 배경으로 꼽힌다. 인조는 세자의 어린 아들 3명을 유배 보내고 며느리 가문까지 파탄 냈다. 부자 관계조차 뛰어넘는 권력욕이 섬뜩하다.

조선왕조 세자들은 많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태조 이성계 때부터 그랬다. 태조가 장성한 아들들을 제치고 후비 소생인 어린 방석을 세자에 책봉하자 5남 방원(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결국 방석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태종은 장자 양녕대군을 일찌감치 세자에 앉혔지만, 양녕이 대신의 첩까지 손대는 등 행실이 나빠 14년 만에 폐위돼 3남 충녕대군(세종)이 왕위에 오른 사연은 잘 알려져 있다. 장남이 세자를 거쳐 순탄하게 왕이 된 것은 세종의 적장자 문종(5대)이 처음이다. 그러나 세종의 차남 수양대군(세조)이 단명한 친형 문종의 어린 외아들 단종을 끌어내리고 왕이 됐다. 세조 3년에 그의 장자 의경세자가 요절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런데 의경세자의 장남 월산대군 역시 왕이 될 기회를 두 번이나 놓친 불우한 장손이었다. 세조 사후엔 그의 차남인 숙부 예종, 단명한 예종 다음엔 친동생인 성종에 밀렸다. 특히, 성종의 즉위는 성종의 장인 한명회와 친할머니(정희왕후)의 야합이었다. 이런 성종의 장남인 연산군도 차남인 중종의 반정으로 폐위됐다.

이렇듯 2인자였던 조선왕조 세자들의 운명은 대부분 기구했다. 권력투쟁 탓이다. 조선왕조실록도 왜곡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이 기록만 들춰 봐도 수백 년 전에조차 권력투쟁 앞엔 부모 자식도 형제도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권력욕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나라를 망치지나 않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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