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리'와 '까칠 준완'이 협업한 '압꾸정'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입력 2022. 12. 1. 09:53 수정 2022. 12. 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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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사진제공=쇼박스

압구정동 하면 무엇이 생각날까? 현대백화점이나 갤러리아백화점? 요즘 다시 부활해 '핫플'이라는 압구정로데오? 그냥 강남의 부촌? 영화 '압꾸정'은 '꾸미다'의 '꾸'를 넣어 'K-뷰티 산업의 메카'인 압구정동의 시작을 바라본다. 그간 숱한 대중문화에서 바라본 '욕망의 동네' 압구정동과 살짝 다른 결이다. 

대한민국에서 압구정동은 확고한 이미지를 획득한 동네다. 서울에 여러 부촌(富村)이 있지만 압구정동은 태생(?)부터 남다른 역사를 지녔다. 조선시대 최고 권력을 누렸던 대표적인 권신 중 하나인 한명회가 말년에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압구정(狎鷗亭)이 위치했던 곳이기 때문. 경기도 광주와 서울 성동구 소속이었던 압구정동은 1975년 강남구가 신설되며 지금의 부촌의 역사를 시작한다. '응답하라 1988'에 나왔던 대한민국 맥도날드 1호점이 들어선 곳도, '오렌지족'과 '야타족'으로 대변되는 해외 유학을 경험한 부유층 젊은이들의 문화가 자리잡았던 곳도 압구정동이다. 

'압꾸정'의 강대국(마동석)은 압구정동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터줏대감, 토박이다. 대리 주차 요원부터 연예인, 조직폭력배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대국을 알고, 누구나 '뭐하지는 모르겠지만 압구정 바닥에서 알아둬서 나쁠 건 없는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사업가라고 자칭하지만 딱히 하는 것이 없는 백수, 아이디어는 차고 넘치지만 자신만의 콘텐츠는 없는 대국이지만 그에겐 그만의 능력이 있다. 담배가 필요한 이들에게 라이터를, 담배를 다 핀 이들에게 재떨이를 연결해주는, 중개인이자 해결사의 능력. 마동석이 자신의 지인의 모습을 투영했다는 강대국의 캐릭터는 잘 생각해보면 한 번쯤 일상에서 접해본 인물이다. 흔히 말하는 마당발, 밝은 영화 캐릭터로 따지면 '홍반장' 같고, 좀 음습한 영화 캐릭터로 따지면 '범죄와의 전쟁'의 최익현 같은 그런 사람. 

사진제공=쇼박스

사실 홍반장과 최익현에 비교하면 능력치가 다소 부족해 보이는 대국이지만 그가 자라고 상주하는 지역이 압구정동이란 것이 그의 '스탯'을 높여준다.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신의 손'을 지닌 성형외과 의사 박지우(정경호)가 알고 보니 그의 고등학교 동창의 동생이란 점, 성형외과 사업 확장에 있어 권한을 지닌 강남구청장이 그의 고등학교 선배란 점을 보라(현대고 또는 구정고 나왔을 테지). 어느 지역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돈과 욕망이 휘몰아치는 압구정동에서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동네에서 대국이 벌이는 허세와 과시는 좀 옹색하지만 보호막 같은 느낌도 안긴다. 그런 면에서 '압꾸정'은 한국인이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형이야~"란 한마디에 모든 게 해결될 수도 있는 넓고도 좁은 커뮤니티, 세치 혀로 수십에서 수천억의 돈이 오갈 수 있는 자본의 세계가 '믿음의 벨트' 같은 윗선과 연결만 되면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욕망 같은.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에 기대어 큰돈을 벌어 부자로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을 다루지만 '구강 액션'에 기대한 코미디 장르인 덕분에 '압꾸정'은 밝고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범죄도시'의 마석도 형사에서 주먹 대신 말을 늘린 강대국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까칠하지만 사명감 넘치는 김준완 선생에서 사명감 대신 욕망을 넣은 박지우의 협업이랄까. 전체적인 코미디에선 맥락이 떨어지지만 제법 웃긴 유효타들이 있어 키득거리기엔 나쁘지 않다(시어머니 드립은 외국에서 이해할 수 없을 듯). 무엇보다 성형과 뷰티 산업으로 거듭나는 압구정동의 모습을 포착한 설정이 재미나다. 

사진제공=쇼박스

앞서 말했듯 그간 대중문화에서 바라본 압구정동은 욕망이 드글거리다 못해 폭주하는 향락의 공간이었다. 유하의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읊지 않았던가. '압구정동은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공장'이라고. 어쩐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할 것 같은 인식을 심어준 1993년의 동명의 영화도 그렇고, 이순원의 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를 영화화한 1995년의 영화 '비상구가 없다'도 그렇고 한동안 압구정동은 소돔과 고모라 같은 느낌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압구정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은 실상 음험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겉으로는 그릇된 욕망을 준열하게 꾸짖는 모습이지만, 만약 개개인에게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자가로 살 수 있으면 살래?'라고 물었을 때 거절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글쎄? 압구정동을 바라보는 비압구정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태양은 없다'의 홍기(이정재)가 아닐까 싶다. 압구정동에 30억짜리 빌딩을 갖던 홍기가 친구 도철(정우성)과 두 청년이 분주하게 오가던 압구정동 뒷골목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2010년대에는 압구정동의 상권이 무너졌다. 젊은이들은 홍대로, 가로수길로, 이태원으로 옮겨갔고, 맥도날드 1호점이 2007년 폐업했고('압꾸정'의 시대와 같다), 몇 년 전엔 권리금 없는 곳들이 허다하게 생겨났다. 부촌의 이미지는 여전하지만 강대국이 그토록 되찾길 원하던 현대아파트보단 서초구의 신축아파트 '아리팍'을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몰락하는 것 같던 압구정동은 놀랍게도 최근 1~2년 사이 압구정로데오를 중심으로 'MZ세대의 놀이터'로 부활했다. 동경과 선망의 공간이었던 압구정동의 변신과 부활이 놀랍다. '압꾸정'도 압구정의 부활처럼 화려하게 극장가를 장식할 수 있을까? 압구정동에서 영화 보고 추억의 '뱃고동' 가서 밥 비벼 먹고 로데오 거리에서 칵테일 한잔 하고 나오면 만사가 편안해질지도. (뭔 말인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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