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대전제일위인(大田第一偉人) 단재 신채호

서영식 충남대 리더스피릿연구소장 2022. 12. 1.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영식 충남대 리더스피릿연구소장

단재 신채호(1880-1936)는 한반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자주적이고 독창적인 사상가이며, 21세기에도 세상이 기억하고 평가해야 할 '지식인 리더십'의 사표(師表)이다. 그런데 단재가 바로 대전에 뿌리를 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는 구한말에 충남 회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림(桃林)마을(현재 대전시 중구 어남동 233번지)에서 출생했으며, 집안 사정으로 인해 충북 청원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한 인물의 인격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유소년기를 이 지역에서 보내며 성장한 것이다.

소년 시절부터 신동으로 칭송되던 단재는 일본이 침략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20세기 초엽부터 한반도 역사연구에 투신했으며, 이미 중년기로 접어들기 전에 중화주의 역사관과 지배자 중심의 왕조사관 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 식민사관을 사상적으로 완전히 극복했다. 나아가 단재는 경술국치 직전부터 시작된 망명 생활의 극한상황 속에서도 당시 동아시아에 소개된 서구 근대학문의 내용과 방법론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응용하는 방식으로 자주적이면서도 웅혼한 민족주의 역사학을 완성한 바 있다. 또한 단재는 중국 사대주의와 유학만을 내세운 집권층의 문사(文士)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쇠락해진 상무정신을 회복하고자, 한반도 역사 속의 대표적인 무인들에 관한 전기를 다수 출판했으며 그중에는 『수군제일위인(水軍第一偉人) 이순신전』도 포함된다.

단재는 현실을 등한시하는 나약한 식자(識者)의 삶을 철저히 배격했다. 즉 그는 일제 강점기가 지속되면서 대부분의 지식인이 초심을 잃고 적당히 타협하거나 현실도피에 급급하거나 탁상공론에 매몰되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역사학자, 언론인, 정치사상가, 독립혁명가였던 단재는 일제의 간계로 인해 영어(囹圄)의 몸이 된 후 뤼순 감옥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순국하기 직전까지도 조국의 독립과 정신의 자유를 회복할 방안을 궁리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최고 수준의 지식인은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마땅한가를 동시대인들에게 실증적으로 보여준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대전은 단재의 시공간적인 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고귀하고 강렬한 불꽃이었던 선생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고 유지를 받드는 노력을 너무나 등한시했다. 보문산 자락에 위치한 단재의 생가지를 이따금 방문해 보면 이미 한 세대 전에 조성된 모습 그대로이며, 단재 홍보관의 내용과 구성 역시 너무나 단조로워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선생의 기념사업회에서 1980년대 중반에 간행한 『단재신채호전집』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 사용된 고어식 표현과 한문 문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복사본에 불과해서, 일반인은 해독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지금부터라도 대전과 충청지역의 국학 연구자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바탕으로, 현대인도 쉽게 이해하고 의미를 새길 수 있도록 단재의 저술을 직접 번역하고 편집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대전시는 시내 중심부에 시립공원 형태로 '단재공원'을 조성함으로써, 서울의 도산공원이나 효창공원처럼 시민과 청소년들이 평소 운동과 산책을 즐기는 동시에, 평생 하나의 숭고한 목표(민족자강과 국권회복을 통한 육신과 정신의 자유 획득)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위대한 인물의 애국혼과 학문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장소적 기반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문화적 차원의 노력이 지속될 때, 대전은 구한말 철도부설과 더불어 형성되어 뚜렷한 전통이 없는 도시라거나 노잼 도시라는 식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과학기술과 국방의 도시, 사통팔달의 교통요충지, 타지방 출신이 쉽게 정착하는 소통과 화합의 도시라는 지금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진정으로 빛을 발할 것이다.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