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왜 역사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를 다시 소환하나

이상원 기자 2022. 12. 1.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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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교과서에 적힌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치려 한다. 헌법 논쟁까지 등장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한국에서만, 그것도 한국사 교과서에만 등장한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1월9일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주의인가, 자유민주주의인가. 11월9일 교육부가 내놓은 ‘초·중등학교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2022 개정 교육과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적힌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치려 한다. 역사 교육과정 연구진과 학계에서는 상당수가 이 조치를 부적합하다고 비판한다. 학술 차원을 넘어 헌법 논쟁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나온다. 8월30일과 9월30일 각각 발표된 1·2차 시안에 없던 ‘자유민주’ 표현이 들어갔다. 교육부 행정예고안 중 중학교 역사 교과과정에는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사회 전반에 걸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착 과정과 과제”라는 대목이 있다. 기존 2차 시안에는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사회 전반의 민주적 변화와 과제”라고만 적혀 있었다. 고등학교 한국사에는 “민주화에 기반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정권 교체”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이라는 구절이 들어갔다. “민주화에 기반해 평화적 정권 교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서술했던 대목이다.

연구진은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교육과정 연구진은 8월 1차 시안, 9월 2차 시안에서 모두 “민주주의”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차 시안을 두고 교육부는 “시안의 편향성 지적” 의견을 연구진에 전달해 수정·보완을 요청했는데, 연구진은 ‘민주주의가 들어가는 게 옳다’는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10월 들어서도 연구진이 교육부 권고를 따르지 않자, 교육부는 연구진을 ‘패싱’하기로 결정한다. 직접 ‘교육부 조정 방안’을 만들어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회에 상정한 것이다. 운영위는 교육부 차관이 당연직 위원장을 맡고, 국장급 인사 1명이 부위원장을 맡는 기구다. 나머지 28명은 민간위원이다. 여기서 통과된 교육부 조정안이 이번 행정예고안이다.

교육부가 운영위 회의 결과를 왜곡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11월13일 〈한겨레〉에 따르면 “참석 위원들은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한쪽을 고집할 게 아니고 집필진(연구진) 스스로 문맥에 맞게 두 가지 표현을 알아서 쓸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하자는 데 동의한 것이었지, 교육부가 연구진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고쳐도 된다는 데 동의하지는 않았다”. 교육부는 11월14일 보도자료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들어간 교육부 안에 대해 “(운영위) 대다수 위원이 동의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회의록을 공개하지는 않는다. 10월14일 열린 역사과 교육과정심의회에서도 ‘자유’를 넣을지에 대해 논의했고, 서면 의견을 낸 위원 중 “연구진 시안의 ‘민주주의’ 용어를 지지하는 위원도 있었으나 명확히 의견을 개진하지 않은 위원도 있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10월14일 서면이나 현장 발언을 통틀어 ‘자유민주주의’ 용어 지지 의사를 밝힌 위원이 있는지 묻자 교육부 관계자는 “없다”라고 말했다.

자유민주주의 주장하는 이유

이번 논란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동안 ‘뉴라이트 사관’에 가까운 견해를 내비쳐왔다. 올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이 부총리는 당시 공약집에 “임시정부는 건국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국민 대표성을 충족하지 않은 채 구성된 임시기구”라고 적기도 했다. “주사파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세계사적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한 대한민국 건국 정신을 분명하게 교육”하겠다는 게 이 후보의 교육감 공약이었다.

‘자유민주주의 표기’는 이주호 부총리가 11년 전에도 관철한 정책이다. 그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11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역사 교육과정을 개정해 ‘민주주의’라고 쓰인 대목 다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꿨다. ‘4·19혁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민주주의의 발전을 설명한다’는 문구를 ‘1960년대 이후 자유민주주의의 발전과 경제성장 과정을 이해한다’고 고치는 식이다.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 위원들이 무더기로 사퇴하고 정치권의 비판이 쇄도했으나 이 장관은 고시를 확정하고 철회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2015년 교육과정 개정 때도 ‘자유민주주의’ 기조는 이어졌다. 2018년 문재인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수립’을 도로 ‘민주주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꿨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이주호 부총리가 돌아오면서 다시 ‘핑퐁’이 시작된 것이다.

인사청문회 때부터 이 부총리는 ‘자유민주주의를 교육과정에 넣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자유민주주의 (교과서 반영) 부분은 실제로 헌법정신에 입각한 교육과정이 개발되어야 된다는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10월28일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자유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헌법의 가치로, 민주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말도 남겼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쓰는 게 ‘헌법정신에 입각한 교육과정’이라는 말로 들린다.

이주호 부총리가 두 개념을 어떻게 달리 여기는지는 불분명하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헌법에 없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는 헌법 전문과 제4조에 등장한다. 우리 헌법에 영향을 준 독일기본법 표현(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이나 영어 번역(free and democratic order)을 토대로, 이 표현이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아닌 ‘자유로운 상태의 민주주의’에 가깝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 대목이 자유민주주의를 뜻하며, 자유민주주의는 “헌법 질서의 최고 기본가치”라고 본다(2000헌마238).

그런데 헌재는 또한, 문재인 정부 교육부가 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민주주의 발전’으로 바꾼 것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의 핵심적 기본원리를 부정하고, 교육받을 권리를 제한한다며 학생과 학부모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은 각하했다. “특정한 역사관이나 정치적 견해에 입각한 역사적 평가에 관한 교육을 강제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결정했다(2018헌마1108).

왜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인가? 뉴라이트 계열 학자로 꼽히는 이명희 교수(공주대 역사교육과)에게 물었다. 이 교수는 2011년에도 자유민주주의를 교과서에 넣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여타 민주주의’와 구분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나라다. 원래 (교과서 속) 민주주의란 용어도 당연히 자유민주주의라는 뜻으로 쓰였다. 언젠가부터 민중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와 같은 개념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었다. 이런 것들과 구별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라고 써야 한다.” 이 교수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적 정체성에는 “반공 정책을 통해 체제를 지켜온 역사”도 포함된다. “오늘날 반공을 강요하는 것은 난센스”라면서도, 역사를 가르칠 때에는 과거 반공 정책의 역할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이명희 교수는 주장했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 연구진에 속한 한 인사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그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로 써야 한다는 의견은, 학계 내부의 통설에 가깝다고 말했다. 소수의 뉴라이트 계열 학자만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이 논의는 사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정리된 사안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제한적이다. 광복 이후 새 국가 건설 방향은 대개 공화주의, 요즘 기준으로는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이 훨씬 강했다. 제헌헌법도 그렇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 구절은 유신헌법에 처음 나온다. 이전 조항은 ‘민주주의 제(諸, 모든) 제도’였다.” 광복 이후 현대사 전개 과정을 온전히 설명하기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의미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한국에서만, 그것도 한국사 교과서에서만 등장한다. 이 인사에 따르면 “어느 나라도 교과서에 자국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그냥 ‘민주주의’ ‘민주적’이라고 쓴다.” 이번 교과과정 개편에서도 세계사를 비롯한 다른 과목에서는 타국의 정치 체제를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는 “결국 자유민주주의라고 쓰는 맥락은 대한민국이 북한과 다른 ‘반공민주주의’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이념 대립으로만 역사 바라보는 관점

반공을 중심에 둔 역사 교육은 어째서 나쁜가? 박래훈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근현대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남북 체제 차이나 대립 자체를 가르쳐선 안 된다는 입장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오직 이념 대립이라는 관점에서만 우리 역사를 바라보게 한다. 1945년 광복과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가 단순히 북한과의 대립 속에서만 흘러온 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끼워넣는 교과서는 북한을 너무도 경계한 나머지, 대북 관계와 무관한 한국 현대사의 성과를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어째서 단순히 자유민주주의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놀라운 경제발전이나 민주주의 성과가 이 용어에 묻힌다”라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이번 일을 윤석열 정부의 평지풍파라고 보지 않는다. 2010년대 초 뉴라이트 학자들의 부상과 이명박 정부의 호응, 2015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 파동 등 일정한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에 속한 인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때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 바뀐 것과,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들어간 것은 비슷한 현상처럼 보이나 차이가 크다. “학자들은 늘 민주주의를 주장했다. 문 정부는 이를 반영한 것이고, 다른 정부는 거스른 것이다.”

다만 2018년 교육과정 개정 때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아쉬운 측면이 없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당시 연구진은 (‘자유민주주의’에 더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이건 넣고 가야 한다’고 밀어붙여, 연구진이 더 논의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번 개정 과정에서도 연구진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삭제하려 했으나, 교육부는 반영하지 않았다. 11월14일, 교육부는 도리어 “(연구진 시안은) 현행 교육과정에도 수록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표현도 반영되지 않아” 직접 수정안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지난 정부 때 사소해 보이는 조치가 “내용 면에서도 불씨를 남겼지만 학자들의 논의를 최대한 반영하는 선례를 만들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11월16일 국회 교육위 위원들은 이주호 부총리에게 교육과정심의회 회의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 부총리는 “(위원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11월29일까지 행정예고를 통해 교육과정 개편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국가교육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연말에 확정·고시할 예정이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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