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가을에 핀 벚꽃, 기후 위기 때문일까/식물세밀화가
지난주 작업실 근처 수목원에 갔다.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와 마른 풀들 사이를 지나던 중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연분홍 꽃을 피운 벚나무였다. 반가움에 나무에 가 사진을 찍었더니 지나던 관람객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를 보며 말했다.
“어머, 이 나무 꽃 피었다. 이상 기후 때문에 이렇게 됐나 봐.”
서너 팀의 관람객이 나무 앞에 서서 기후변화, 기후 위기, 이상기후와 같은 말을 했다. 그러다 한 분이 나무의 이름을 내게 물었고, 나는 답했다.
“춘추벚나무 아우툼날리스예요. 이거 원래 가을에 꽃 피는 나무예요.”
“벚꽃이 가을에도 피어요? 이상한 건 줄 알았네.” 질문했던 분이 오히려 놀라며 말했다.
대부분의 벚나무속 식물은 봄에 꽃이 핀다. 그러나 춘추벚나무의 꽃은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볼 수 있다.
며칠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장미가 늦가을에 핀 걸 봤다며 기후 위기 때문에 걱정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댓글로 누군가는 겨울에 제비꽃을 봤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봄에 빨갛게 단풍 든 단풍나무를 봤다고도 했다. 모두들 본인 상식 밖의 식물 현상을 이야기하며 기후 위기 때문이라고 단정 지었다.
기후 위기가 식물 생태 시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100년 전보다 2~3도가 올랐고, 기온이 1도 오를수록 식물의 개엽이 3.86일 당겨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어느 장미가 가을에 꽃을 피우고 특정 단풍나무가 봄에 빨갛게 물드는 것을 두고 기후 위기가 원인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도시에 심기는 장미 중에는 봄과 여름, 가을에 걸쳐 내내 꽃을 피우는 사계 장미가 있다. 단풍나무 중에도 1년 내내 빨간 단풍잎을 피우는 홍공작단풍이 있다. 커뮤니티 게시판에 언급된 식물이 이들이라면 이상 현상이 아니라 원래 이런 것이다.
내가 어떤 대상을 보고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다면 우선 나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상식 밖의 자연현상을 봤을 때 내 상식이 틀렸거나 대상 식물에 대한 나의 경험 데이터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춘추벚나무와 장미가 가을에 꽃을 피운 게 이상해 보인 것은 가을에 꽃 피우는 장미와 벚나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몰랐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후 상대인 식물에게서 이유를 찾자. 이때 기후 위기를 의심해도 늦지 않는다.
식물의 이상함을 지적하고 있는 우리는 사실 우리의 무심함을 방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지적은 인류가 저지른 오염 문제가 원인이기에 인간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라고 볼 여지도 있지만 반성은 말과 행동이 같을 때의 이야기다.
가을에 장미와 벚꽃을 마주해 놀랐다는 충격만큼, 키보드로 지구에게 미안하다고 쓰는 걱정만큼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 외 다른 생물종을 위해 지금 그만 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실상 말과 행동이 같지 않다면 우리가 지구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시혜적인 자기만족일 뿐 자연현상을 관조적으로밖에 보지 않는 것이다.
며칠 전 방문했던 정원에서 미선나무에 꽃이 핀 걸 봤다. 물론 봄에 만개한 모습과는 다르게 가지에 띄엄띄엄 흰 꽃 몇 개가 피어 있었다. 미선나무, 개나리, 철쭉…. 이들은 종종 겨울에 꽃을 피운다. 초봄 가장 빨리 꽃을 피우는 식물이기 때문에 겨우내 꽃 피울 준비를 하다가 타이밍을 착각하면 일찍이 겨울에 꽃 몇 송이를 피우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일이 생명과 번식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자연은 설정값을 넣으면 늘 같은 결과값이 나오는 물건이 아니다. 인간 개체 각각의 생각과 행동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듯 식물 역시 수많은 개체 중 단 한 그루, 가지 하나의 꽃 하나 정도는 타이밍을 착각해 불시에 개화할 수도 있다.
기후 위기가 식물 생태계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로 증명된 사실이다. 이와 별개로 자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려는 노력 없이 이슈에 몰두해 모든 자연현상의 원인을 두고 “답은 기후변화로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인간의 오만함이 문제이지 않나 싶다. 산을 깎아 도로와 아파트를 짓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식물을 찾다가 생태계 교란의 위험이 있는 외래 생물을 적극적으로 들여오고 이용하면서 우리 고유의 자생 생물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조차 우리는 ‘기후 위기’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떠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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