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어두워질 줄 알기

기자 2022. 12.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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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밝다.” 자정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밤늦게 일이 있어 번화가에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저 말이 튀어나왔다. 도무지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밝기였다. 밤하늘에 달이 떠 있지 않았더라면, 밤이라는 자명한 사실마저 의심했을 것이다. “심지어 낮보다 더 밝은 것 같아.” 인공조명 사이를 거닐며 친구가 말했다. 그는 빛에 민감해서 잠자리에 들 때면 암막 커튼을 친다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은 밤에도 너무 밝거든.”

오은 시인

비슷한 시기, 운명처럼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시공사, 2021)를 읽게 되었다. 저자인 아네테 크롭베네슈는 빛 공해의 원인에서 출발해 그것이 인간과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책을 다 읽고 ‘밤에도 밝으면 좋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깨달았다. 무수한 인공조명 때문에 식물도, 그 식물의 수분을 도와주는 곤충도, 밤에 이동하는 철새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혼란에 빠져 본래의 생체 리듬을 잃어버린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빛 공해 노출 면적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다고 한다. 늦게 잠자고 깊이 잠들지 못하는 현상에 빛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 인간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밝음은 여전히 편리의 한 형태로 인식되고 있다. 빛이라는 단어 또한 주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어두운 거리를 실족의 위험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도 빛 덕분이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일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찾는 일처럼 여겨진다.

언제부터인가 불야성(不夜城)은 더 이상 고유명사가 아니게 되었다. 어딜 가든 밝고 뜨겁다. 도심에서 밤은 밤다울 수 없다. 저자는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밝아지고 있다. 우리는 더 적은 에너지로 같은 양의 빛을 생산해 내는 대신, 같은 양의 에너지로 더 많은 빛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기후 변화를 멈추지도 못하면서 밤의 어둠을 지워 버리고 우리의 세계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더 밝을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富)와 문명의 과시를 위해 빛이 남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밤에 충실하라(Carpe Noctem)!”라는 그의 말은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빛의 이면을 바라보게 해준다.

문득 나희덕 시인의 시 ‘어두워진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 시는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이라는 구절로 끝난다. 오래, 비로소, 가만히, 혼자…. 어둠을 긍정하는 일은 시간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둠은 고요하고 차분한 상태로 나를 이끌어준다. 하루를 정리하며 스스로 들여다보는 시간이 밤인 이유도 어둠 덕분일 것이다. 바깥의 열기와 흥분은 어둠 속에서 내일을 살 수 있는 에너지로 변환된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저문다는 말에는 어두워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날이 저물고 밤이 찾아오는 일처럼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찾아오는 일 또한 자연스러워야 할 것이다. 밤에 생활하는 이들을 위해 거리에 가로등은 필요할 테지만, 밝음이 지나쳐 어둠을 해쳐서는 안 된다. 밤은 밤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을 텐데, 인위적으로 자연을 바꾸려는 시도는 인류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들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도 어떻게든 빛을 밝히는 사람을 멀찌감치서 동경했다. 다가오는 새해, 나는 어둠을 어둠 그대로 긍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오래, 더 늦게까지 머무는 사람이 아닌 때맞춰 자발적으로 어두워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빛이 넘칠 때는 한 줄기 빛살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테니, 이는 어둠의 미덕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저물지 않으면 해는 다시 떠오르지 못한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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