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뜨개질하는 마음

이유리 소설가·소설집 ‘브로콜리 펀치’ 2022. 12. 1.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한상엽

뜨개질은 내 오랜 취미다. 최근 겨울을 맞아 대바늘뜨기에 다시 재미가 붙어 올해 들어 벌써 두 벌의 옷을 완성했다. 캐시미어로 뜬 푸른 스웨터와 브이 넥 조끼인데, 조끼는 완성 후 꽤나 마음에 들어 엄마에게 자랑을 했더랬다. 그러나 내 첫 뜨개질 선생님이자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뜨개질 고수인 나의 엄마 손 여사는 내가 펼쳐놓은 조끼를 영 탐탁지 않아 했다. 군데군데 코 모양이 이상하고, 소매 진동 둘레에 코를 너무 많이 주었는데 고무단은 너무 짧다면서. 그러고는 “더 말하면 엄마는 맨날 흠만 잡는다 할 것 같으니 그만 말할게”라며 혹평을 마무리했다. 칭찬받을 줄 알았던 내가 시무룩해져 있으니 이렇게 덧붙였다. “뜨개는 빨리 완성하려고 할수록 미워져.”

사실 엄마 말이 맞는다. 내 뜨개질의 문제는 ‘빨리빨리’에 있다. 뜨개질이란 같은 모양의 한 코 한 코를 더해 편물을 쌓는 것인데, 빨리 완성하는 데만 집중해 후루룩 뜨다 보면 그 모양이 일정하지 않게 나올 수밖에 없다. 겉뜨기 안뜨기를 번갈아 반복해야 하는 고무단은 짧아질 수밖에 없고, 양쪽이 똑같아야 하는 소매 진동도 짝짝이가 되고 만다. 천천히, 차분하게 한 코씩 떠가야 여유롭고 예쁜 작품이 되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뜬 사람의 심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게 뜨개질이다. 성격 급하고 매사 대충대충인 나와 뜨개질은 얼핏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뜨개질의 매력은 사실 바로 그 점에서 비롯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뜨개질에는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점이랄까. 대충 떴든 잘못 떴든, 편물을 수정할 방법은 항상 있다. 코를 빠뜨렸으면 다시 주우면 되고 무늬가 잘못됐으면 잘못된 곳까지 되돌아가면 된다. 정 마음에 안 들면 실을 전부 풀고 다시 뜨는 방법도 있다. 고된 일이긴 하나 어쨌든 해답이 있는 것이다. 저지른 실수를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세상엔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뜨개질은 꽤나 너그러운 취미인 셈이다. 특히나 실수투성이인 나 같은 사람에겐.

이번의 조끼를 교훈 삼아 다음엔 손뜨개 양말에 도전하려고 한다. 좀 더 차분하게, 정성스럽게, 하지만 실수하면 언제든 고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예쁜 양말을 완성하면 손 여사에게 선물할 생각이다. 이번엔 칭찬받을 수 있기를.

※12월 일사일언은 이유리씨를 포함해 옥성아 SBS PD, 이한 작가,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 소장이 번갈아 집필합니다.

이유리 소설가·소설집 '브로콜리 펀치'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