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빨라야 위태롭지 않다

국제신문 2022. 12.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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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는 허구다. 유능과 무능이 있을 뿐이다. 나라의 운명은 간신 한 명으로도 충분하다. 진나라는 환관 조고로 인해 단명했다. 조고는 진시황의 유언을 조작해 우매한 막내를 황위에 올렸다. 조고는 황제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馬)이라 했다. 사슴이라 말하는 신하를 모두 숙청한 조고는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다. 사슴을 사슴이라 말하지 못하는 기원전 210년 진나라와 바이든을 바이든이라 말하지 못하는 2022년 우리나라.

이쯤 되면 과학은 무속으로 새겨야 한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과학방역을 하고, 청와대를 피하고, 조문 가서 조문을 안 하고, 이마에 무슨 칠을 하고, 근조 글자가 안 보이게 뒤집어 리본을 달고, 영정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를 만들고…. 무능에다 인간에 대한 예의까지 없는 시대다. 공멸의 위험이 크다.

이쯤 되면 시대착오다. 일본은 정치에 무능하다. 민중 봉기의 역사가 없다. 그러기에 극우가 장기 집권하고 있다. 역사는, 극우의 집권은 쇠퇴 혹은 공멸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이미 2018년에 PPP(Purchasing Power Parity·구매력평가지수) 기준 일본을 넘어섰다. 일본은 단지 쉬러 가는 곳 혹은 관광 가는 곳일 뿐이다. 야만적인 식민 지배를 당했고,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실익도 없으며, 우리나라를 회복해야 할 자기 땅이라 주장하는 일본에 매달리고 구걸하는 것은 한참 지난 시대 얘기다.

최초의 대통령이다. 친환경 에너지 산업을 바보짓이라 하고, 취임 몇 달 만에 20%대 지지율을 기록하고, 경제와 외교를 모르고, 자유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고, 야당을 친북좌파라고 하며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고, 아무도 왕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본인은 왕으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그리하여 자기 나라를 모르는 대통령. 그에게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것(지성·도덕성·능력)이 없다. 반면 결코 없어야 할 것(선민의식·무속·무능)이 있다.

박정희 시대를 그린 이병주 작가의 ‘그를 버린 여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경멸해야 할 국가원수를 받드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나 자신을 너무나 불쌍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니까요.” “남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혼자서 계속 지껄이고 있습디다. 말을 많이 한 대서 나쁜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그 사람의 경우는 불안한 데서 생기는 세설 같았소. 요는 자신이 없어진 거지.”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국가원수도 불행하지만 국가원수를 존경할 줄 모르는 국민도 불행하지 않겠소?” 우리는 불행 속에서 더 큰 불행으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빨라야 위태롭지 않다. ‘자기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손자의 말은 속도의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는 세계적이다. 느리면 위태롭다. 자전거도 속도가 없으면 넘어진다. 영화나 소설도 속도감이 있어야 흥행한다. 일도 속도가 있어야 이루어진다. 속도가 없으면 사고가 나거나 지리멸렬한다. 빠르면 안전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며, 재밌고, 문제 해결이 쉽다.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가 있다. 좋은 정치는 함께 잘 사는 정치다. 나쁜 정치는 자기들만 잘 사는 정치다. 좋은 정치는 유능하고 상식적이다. 나쁜 정치는 무능하고 몰상식적이다. 좋은 정치는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불평등을 감소시킨다. 나쁜 정치는 신분주의를 강화하고 불평등을 증가시킨다.

경제는 정치다. 외교는 정치다. 산업은 정치다. 문화는 정치다. 좋은 삶은 정치다. 정치가 돈을 분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숭고한 일이다. 좋은 정치를 발견하고 키우며, 나쁜 정치에 저항하는 일. 우리나라는 정치에 유능하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민중봉기의 역사가 있다. 1894 동학혁명, 1919 3·1운동, 1960 4·19혁명, 1979 10·16 부마항쟁, 1980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 6·10항쟁, 2016 촛불혁명. 민중봉기가 있었기에 혁신이 빠르고 광범위했다.


우리나라는 보편적 개인이 형성된 나라다. 저마다의 형식과 내용으로 살지만, 그 형식과 내용 아래엔 상식과 합리에 대한 보편 정서가, 거대하게 흐르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야 한다. 정치해야 한다.

임규찬 도서출판 함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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