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사 생도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며… 바다는 ‘블루 오션’이다

박길성 고려대 명예교수·사회학 2022. 12.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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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도 사방이 수평선이다. 나를 한가운데 점으로 커다란 원이 만들어진 셈이다. 육지에선 직선으로만 보이던 수평선이 여기서는 동그란 원이다. 어디가 시작이고 종착인지 어디가 중심이고 주변인지 가늠이 안 된다. 산은 높이로 으뜸을 자리매김하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다. 바다 예찬은 겸손과 넓음에 있다.

해군사관학교 제77기 사관생도 164명이 110일간 인도·태평양을 횡단하는 장장 3만9800km의 순항 훈련 일부 구간인 태평양 항로에 참여해 항해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건조한 해군의 첫 번째 훈련함인 전장 142m, 4500톤의 한산도함에 편승했다. 한산도함은 우리 청년 생도들에게 경계와 지평을 넘어서는 거인의 어깨 역할을 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위용과 내용을 갖추고 있다. 지난 9월 2일 진해를 출발한 생도들은 12월 20일 귀환한다.

태평양의 한낮은 수평선을 경계로 바다와 하늘의 두 영역만을 허락한다. 태평양의 심야는 네 별로 이루어진 남십자성의 은하계를 중심으로 별 헤는 밤을 펼쳐낸다. 북반구 하늘과 달리 남반구 하늘에는 알려진 별 이름이 별반 없기에 그냥 이름 붙이면 그게 별의 이름이다. 모두 별자리 작명가가 된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로 시작하는 노래 가사가 이걸 두고 나온 듯하다. 생도들에게 우리의 신화와 전설에 맞는 별자리 이름을 붙여보라고 한다.

순항 훈련 전단 내부는 실수를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는 유기체의 연결처럼 꽉 차서 돌아간다. 전파 탐지보다 자신의 눈으로 바다 위 물체를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견시병, 계속 흔들리는 만큼 함정에서는 더 많은 칼로리가 필요하다는 이치를 조리로 실행하는 취사병, 음악이 주는 사기 함양의 힘을 믿는 군악대장, 거친 물살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가는 두 엔진 동력을 조정하는 기관장, 상대방 함장의 마음을 읽어야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음을 강조하는 함장, 위트와 감성의 두뇌, 작전과 전략의 두뇌로 거함을 이끌어가는 전단장…. 그 역할 하나하나 정교하고 치밀하다.

생도들은 이번 순항 훈련에서 거인의 어깨에 올라 더 넓은 세상을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9국 도시 10곳을 다니는 항해를 하며 정박하는 곳에서는 대한민국의 외교관임을 자임하고 다양한 활동을 한다. 지금 위치를 NLL의 어느 지점으로 설정하며 실전처럼 훈련하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생도들은 순항 훈련에서 우리의 바다와 해양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는 결기와 소양을 갖춰가고 있다.

배와 바다에는 유난히 한국적 정서가 많이 담겨 있다. 우리는 위기, 도전, 기회, 희망을 얘기할 때 바다와 배를 우리의 일상 언어로 사용하곤 한다. 함께를 강조할 때 ‘우리는 한 배를 탔다’고 얘기한다.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면 ‘대한민국호’가 출범했다고 하며, 최고 책임자를 대한민국을 이끌 ‘선장’이라고 칭한다. 바다가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바다에 관해 오래 누적된 우리 마음의 습속은 수세적이고 위축적이고 방어적이다.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바다는 외부 세력의 침략 발판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다를 통해 성공한 경험이 없기에 방어해야 하는 무엇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적 번영은 무역과 해양을 적극 수용한 결과다. 무역은 거의 대부분 바다를 통해 이루어진다. 방어적인 바다에서 확장적인 바다로 나아가야 할 현실적 이유다.

바다는 1%밖에 개발되지 않은 신대륙이다. 태평양 바다 색깔만큼이나 진한 블루 오션이다. 해양의 상상력을 무한히 강조하는 까닭이다. 순항 훈련함에 편승하여 태평양을 건너며 가능성을 본다. 그 든든한 버팀목이 군함이다. 어제의 군함은 침략 국가의 상징이었지만, 오늘의 군함은 경쟁 국가의 상징이다. 그리고 내일의 군함은 공존의 상징이어야 한다. 공존의 신대륙을 향한 대항해 시대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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