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63] 미쉐린 스타셰프의 반찬가게
한국인 최초로 미쉐린 스타를 받은 셰프 후니 김이 최근 뉴욕에 반찬 가게를 열었다.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제주도에서 담근 장과 미국 전역의 유기농 식재료를 구해서 만드는 음식이다. 가격은 싸지 않지만 건강하고 올바른 식재료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 반찬 가게 구석의 허름한 문을 열면 비밀 통로가 나온다.
아름다운 천장화와 더불어 피워놓은 침향의 냄새가 그윽하다. 다소 신비로운 시각적·후각적 진입을 하면 통로 끝에 고급 한식당 ‘메주(Meju)’가 등장한다. 8명이 주방을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이곳의 음식도 천연 발효한 장과 유기농 식재료로만 만든다. 된장국, 각종 전, 생선회 무침, 소고기 구이와 솥밥 등으로 구성된 음식의 연출 역시 간결하다.
1980년대 프랑스의 누벨 퀴진, 1990년대 스페인의 분자 요리, 그리고 2000년대 초반 노르딕 음식의 장르를 개척한 셰프들과 레스토랑의 영향력은 아직도 세계 음식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냉정하게 판단할 때 현재 유행하는 음식들은 이 세 장르의 모방이거나 재해석, 또는 조합이다. 모던 한식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후니 셰프의 음식은 이런 트렌드에 영합하지 않는다. 단골로 등장하는 성게알, 캐비아, 송로버섯도 없다. 한식의 가장 본질적인 장의 깊은 맛과 좋은 식재료, 그리고 전통 풍미의 재현을 목표로 한다. 서양의 고급 식재료와 화려한 연출에 익숙한 현대 외식 문화에 역행하는 선택이다. 뉴욕에서는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어려운 과업,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후니 셰프는 두 가지 코드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천연 발효 장맛이 깃든 반찬과 음식을 친절하게 소개하는 일, 그리고 식당을 찾는 엘리트 고객들에게 고급 전통 한식을 경험시키는 일이다. 뉴욕의 ‘구루마스시(車すし)’나 스페인의 ‘에체바리(Etxebarri)’ 레스토랑처럼 음식의 본질과 깊이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고객들만이 여기를 찾을 것이다. 마음속 깊이 힘찬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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