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57] 트로트 팬덤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2022. 12. 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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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올림픽체조경기장은 파란빛으로 출렁거렸다. 가수 영탁의 앙코르 서울 콘서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탁을 상징하는 파란색의 다양한 굿즈(goods)를 장착한 사람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른바 트로트 가수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팬덤의 양상이 심상치 않다.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는 회원 수가 18만명을 넘었다. 김호중의 팬클럽 ‘트바로티’는 13만5000명, 송가인의 팬클럽 ‘어게인’은 6만명, 영탁의 공식 팬클럽 ‘영탁이딱이야’는 5만8000명, 이찬원의 팬클럽 ‘찬스’는 5만1000명이 넘는 회원 수를 보여준다. 회원 수만으로도 팬덤의 규모가 상당한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연령층의 팬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50대 이상 여성이 특히 많았는데, 이들의 이른바 ‘충성도’는 상당했다. 이들 중에는 이미 청소년 시기에 조직적인 팬 문화를 경험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트로트 가수를 상징하는 특정 색깔은 1990년대 아이돌 팬덤의 풍선 색깔을 떠올리게 한다. H.O.T.의 흰색이나 젝스키스의 노란색처럼 임영웅(하늘색), 김호중(보라색), 송가인(분홍색) 등은 각각 특정 색상으로 차별적인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에 따라 팬들은 특정 색상의 다양한 굿즈를 사용하며 동질감을 드러낸다.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의 팬 활동은 적극적이다. 어쩌면 이들은 중년 이후에 찾아오는 갱년기나, 자녀가 독립하여 집을 떠난 후 양육자가 느끼는 슬픔이나 외로움을 뜻하는 ‘빈 둥지 증후군’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스타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텅 빈 가슴에 어느 날 들어온 스타는 이들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스타를 보며 매혹을 느끼고 유쾌한 충격을 받고 고조된 기분을 경험하는 것은 이들이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현재 트로트 팬덤에서 중장년층의 공동체 문화와 놀이 문화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연구자 헨리 젱킨스는 팬덤이 “평범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억압해야 했던 흥분과 자유를 회복시켜주는 대안적 문화 경험의 영역”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스타를 중심으로 연대하는 팬들의 활동이 현대 사회의 행복한 대안적 공동체가 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다만 그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주제로 친목을 도모하면서 능동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스타가 있어 이 허무하고 쓸쓸한 세상을 버티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의 스타는 지금처럼 반짝반짝 빛나주길. 우리가 그 빛을 따라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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