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던 두 아이의 아빠…13년 전 연쇄살인마였다[그해 오늘]

한광범 입력 2022. 12. 1. 00:03 수정 2022. 12. 1.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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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대구 노래방 여주인 강간살인범 검거
성범죄 전과 변태적 성향…철저히 정체 숨겨
범행 직후 태연히 일상생활…일말 반성 없어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7년 11월 21일 늦은 밤. 대구의 한 길거리에서 20대 여성 A씨가 강도상해 범행을 당했다. 귀가 중이던 A씨는 모르는 휴대전화를 보고 길을 걷던 중 모르는 한 거구의 남성이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기습적으로 가격 당했다.

여성은 자신의 가방 등을 훔쳐가려던 남성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범인은 둔기로 A씨 머리를 수십 차례 내리쳤다. 멀리서 범행 현장을 목격한 행인이 뛰어 달려오자 범인은 도주했다. 중상을 당한 A씨 곧바로 병원에 실려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다. 범행 현장 인근의 CCTV 속에는 범행 전 범행대상을 물색하던 범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경찰은 CCTV 속에서 범인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확인하고 현장에서 담배꽁초를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CCTV 영상을 토대로 경찰은 같은 달 28일 범인을 검거했다. 대구에 사는 당시 48세 남성 이모씨였다. 아내와 중고교생인 두 자녀를 두고 있던 평범해 보이는 남성이었다. 경찰에 붙잡힌 이씨는 초기 조사에선 “기억나지 않는다”며 잡아뗐다. 추가 조사에서 경찰이 범행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제시한 후에야 범행을 자백했다.

강도상해로 검거 후 13년전 살인범행 드러나

강도상해 범인 검거로 끝날 것 같았던 사건은 그 직후 국과수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DNA 분석 결과가 통보되며 양상이 달라졌다. 국과수는 이씨 DNA가 2004년 6월 대구에서 발생한 노래방 여주인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를 통보했다. 13년 넘게 미제로 남았던 대구 노래방 여주인 살인사건 현장에선 범인의 피부조직 일부와 범인이 버린 담배꽁초가 발견된 상황이었다.

경찰 수사팀엔 피살된 노래방 여주인의 아들이 형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경찰은 유족인 해당 형사를 일단 수사팀에서 빼는 한편, 미제사건팀 등으로 인원을 보강해 수사팀을 대폭 확대했다. 이씨도 DNA 증거 앞에 결국 여주인 B씨 살해 사실을 자백했다. 경찰은 12월 1일 13년 전 미제사건 범인 검거 소식을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이씨는 2004년 6월 자신이 운영하던 술집에서 멀지 않은 노래방에서 여주인을 강간하려다 살인했다. 그는 이미 기절한 피해자가 신고할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살해 후에는 피해자 시신을 엽기적으로 훼손하기까지 했다. 현장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가 발견됐지만 지문이 전혀 발견되지 않으며 장기 미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2009년 발생한 또 다른 미제 살인사건과 이씨 범행수법이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2009년 2월 대구 수성구에서 한 노래방 업주 C씨가 숨진 채로 발견됐는데, C씨 역시 B씨와 비슷한 수법으로 잔혹하게 살해됐다.

범행수법의 유사성을 근거로 경찰은 이씨에게 범행에 대해 추궁했다. 하지만 이씨는 범행을 부인했다. 그는 경찰 조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자해를 하기도 했다. 자해로 부상을 입은 이씨에게 경찰은 “다 털고 가자”고 설득했고, 이씨는 결국 C씨 살해 사실도 자백했다.

대구 노래방 여주인 연쇄살인범 이모씨를 수사한 경찰 수사팀엔 첫번째 살인 피해자의 아들이 형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13년 전 피살된 모친의 살인범을 형사가 된 아들이 자기 손으로 붙잡았다.(사진=연합뉴스)
조사 결과 과거 노래방을 운영한 경험이 있던 노래방 업주 모임에서 본 적이 있던 C씨를 이듬해 2월 찾아가 강간을 시도하다 잔혹하게 살해했다. 이씨는 두 번째 살인 사건 현장엔 첫번째 범행과 달리 지문 등 어떠한 범행 흔적도 남기지 않는 치밀함을 보였다.

가족들 “그럴 사람 아니다…믿을 수 없다”

두 건의 끔찍한 연쇄 살인 범죄를 저질렀지만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살인마 실체를 숨기고 ‘평범한 가장’이라는 가면을 철저히 썼기에 가족들 모두 속아 넘어갔다. 경찰에 체포됐을 당시 가족들은 ‘이씨가 그럴 사람이 아니다’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씨 아내는 경찰 조사에서 “싸움도 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사람도 아니다. 평소에 여자들을 특히 더 조심히 대한다”며 “범행을 저질렀다는 걸 믿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씨 친동생 역시 “이씨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평소 말수가 거의 없다. 감정 표현도 없이 많이 참고 억누르는 성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수사 당시 진행한 정신분석 결과에서 이씨는 ‘여성이 친근감 있게 남자를 대하는 것은 성적 접촉을 허용하는 것’ 등 강간에 대한 그릇된 성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경찰은 이씨 차량에선 콘돔과 전기충격기 등 성범죄 등에 사용할 법한 물건들이 다수 발견됐다.

사이코패스로 판명되진 않았지만 이씨는 피해자들이 받은 피해에 대해 철저히 무관하고 큰 죄책감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피해자 시신을 훼손한 후 일부를 가지고 가거나, 살인 범행 직후 자신의 가게로 가 범행 당시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던 이씨는 어린 시절부터 변태적 성향을 보였다. 20대이던 1996년 3월 길거리에서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을 시도하다 붙잡혀 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전과도 있었다.

검찰 “사형 선고해달라”→법원, 무기징역 선고

강간치상 전과를 숨기고 1999년 7월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이듬해 자녀까지 출산했다. 그리고 첫 번째 살인 범행 직후인 2005년엔 둘째 자녀까지 낳으며 보통의 아버지 모습을 하며 생활을 했고, 2009년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용의 선상에조차 오르지 않고 수사망을 피하며 거리를 수년간 활보했다.

검찰은 강간살인 등의 혐의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피해자들을 물욕과 성욕 대상으로 삼아 잔인하고 극악한 범행을 연쇄적으로 저질렀다. 반성은커녕 범행을 은폐·축소하려 하고 있어 일말의 교화 가능성을 찾아볼 수 없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1심은 “잔혹한 범행으로 처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이 죽는 순간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고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며 “범죄에 상응하는 응분의 형벌에 처해야 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의 사형 선고 구형에 대해선 “사형 선택을 고려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생명을 박탈하기보다는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된 상태에서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하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씨는 1심 판결에 대해 “형량이 과도하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2심도 “1심이 선고한 무기징역형은 이씨의 죄책에 상응하는 적정한 형벌인 것으로 보인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이씨가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한광범 (toto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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