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서도 주먹 뻗던 투혼…복싱 챔피언, 왜 무연고 사망자 됐나 [김민석의 살아내다]

김민석 입력 2022. 12. 1. 00:02 수정 2022. 12. 1.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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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 특징 중 하나는 영정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장례 의뢰 공문에는 고인 사진이 첨부돼 오지 않는다.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동 주민센터 공무원들은 설령 가족이 찾아가도 사진을 내어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러주는 '나눔과나눔'은 고인의 연고자에게 부고를 알릴 때 적극적으로 영정에 쓸 사진이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채 장례에 와서 당황하는 가족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례에 영정이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다. 모두가 영정과 위패를 같이 들고 있는 화장장에서, 나 홀로 위패만 덩그러니 들고 있으면 소외감이 들고 움츠러든다. 괜히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 현대의 장례 문화에서 영정 사진은 ‘당연히’ 필요하다.

운이 좋아 그 당연한 사진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받는다면 편집을 해야 한다. 대부분 단체 사진 속 고인을 확대해서 촬영한 탓에 화질이 뭉개져 있기 때문이다. 편집 작업은 통상 내가 맡는다. 퇴근 후에 별도의 시간을 내야 하기에 남들 눈엔 귀찮게 보이겠지만, 작업을 위해 고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보면 마음속에 작은 친근함이 자리하게 된다. 그때 느끼는 친밀감은 장례 현장에서 고인을 애도하는 걸 보다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지난겨울 장례를 치른 한 고인의 영정도 내가 만들었다. 고인의 임종을 지킨 친구들이 그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히 그 사진을 쓸 수 있었다. 나는 주민등록증에서 고인의 얼굴만 잘라낸 뒤 새롭게 배경을 만들고 정장을 입혔다. 그러자 선한 눈매의 고인은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처럼 보였다. 편집이 완성된 영정을 액자에 넣고 가방에 챙겨 퇴근했다. 다음날 오전 장례라 사무실에 들를 여유가 없었다. 나는 집에 도착해 고인의 영정을 책상 한쪽에 세워두었다. 그냥 가방에 넣어두기도, 그렇다고 바닥에 두기도 애매했다. 괜히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잠들기 직전까지 집에서 생활하는 내내 고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 덕에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땐 눈감고도 고인 얼굴을 그릴 수 있었다.

고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것은 수골(화장하고 남은 뼈를 거두는 일) 도중의 일이었다. 화장이 끝난 유골 속에서 관에 박혀있던 못을 골라내는 승화원 직원의 손을 바라보다 고인의 친구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혹시 고인은 어떤 분이셨나요? 제가 사진을 편집해서 한참 고인의 얼굴을 보았는데, 인상이 참 푸근하시더라고요.”

미국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의 작품 'Between Rounds'의 한 부분.

나의 질문에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친구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도리어 나에게 되물었다. “김O동이를 몰라요? 얼굴까지 봐놓고!”

고인의 이름도, 얼굴도 처음 보는 나는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다는 그 반응에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혹시 예전에 활동했던 연예인인가? 아예 모르겠다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친구 중 한 명이 이번엔 정보를 조금 더 추가해 다시 한번 물어왔다. “복싱 아시아 챔피언 김O동 몰라요? 이 친구가 바로 그 김O동이에요!”

그 말에 반응한 건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조회사의 장례지도사였다. “아~ 그 김O동이 이 분이에요? 저는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고인의 친구들과 연배가 비슷한 장례지도사는 고인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고, 고인을 아는 사람이라는 반가움 때문인지 친구들은 장례지도사와 고인의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어나서 복싱은커녕 종합격투기도 본 적이 없는 나는 낄 수가 없는 대화였다. 더군다나 고인이 활동했던 시기는 1970년대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역사다.

“이 친구가 무연고로 갈 사람이 아니에요. 은퇴하고 술집도 크게 했거든요. 결혼을 안 하고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갔어요. 건강하게 살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아프니까 다들 가족을 찾아. 병원도, 장례식장도요.” “저도 예전에 경기를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무연고로 장례를 치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세상 참…. ”

장례지도사와 친구들은 혀를 차며 고인의 유골함을 기다렸다. 다시 한번 수골실에 침묵이 깔렸다. 나도 덩달아 말없이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았다. 설마 복싱 챔피언일 줄은 몰랐다. 나는 챔피언과 하루를 보냈구나.

장례를 모두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복싱을 좋아했다. 그 시절엔 오락거리가 그것뿐이었다며 술 마신 날에는 종종 과거의 챔피언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곤 했다. 아버지는 고인을 알고 있을까?

“어. 민석아 무슨 일이냐?” 휴대전화 너머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어제부터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했다. 영정 사진을 편집하고, 그 영정을 책상 위에 두고 하루를 보냈던 것, 그리고 오늘 들은 고인의 과거에 대해서. “그래서 제가 전화를 건 이유는, 아버지도 고인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가 해서요.”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다 그 시절에 복싱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인을 알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 체급을 석권했던 챔피언인데 모를 수가 없다면서. “그래도 챔피언인데 무연고 사망자로 장례가 치러졌다는 게 조금 씁쓸하네.”

아버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고인은 링 위에 마지막까지 서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 고인이 무연고사망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해졌다. 항상 사람들에게 모든 무연고 사망자가 빈곤하지 않다고 이야기해왔고, 실제로 그런 사례를 접하기도 했지만 ‘챔피언’이라는 말이 주는 울림은 조금 달랐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복싱은 단순한 스포츠 이상이었다고 한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헝그리 복서가 난전 끝에 쟁취하는 승리는 때로는 삶의 희망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어린 시절에 본 영화 '로키'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승패와 상관없이 그의 경기가 주었던 감동을 생각하니 아버지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나는 포털에 고인의 정보를 검색하다 어느 블로그에 게시되어 있는 고인의 경기를 보았다. 아주 오래전의 영상이라 화질에는 노이즈가 가득했지만, 링 위에서 고인을 찾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하루 종일 보았던 얼굴이니까. 고인은 영상 속의 경기에서 일본 선수에게 무참히 패배했다. 찾아본 바로는 이 경기 이후 고인은 더 이상 링 위에 오르지 않았다. 영화가 아닌 실제 복싱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무연고 사망자의 대부분은 빈곤하다. 그 사실을 살짝 비틀어 이야기하자면, 모든 무연고 사망자가 빈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른다. 고인이 빈곤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빈곤은 게으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너무도 손쉽게 단정 짓는다. 종종 기사를 보다 보면 그렇게 고인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길래 잘 살았어야지. 게으름 피우지 말고 성실하게 살았어야지.'

전직 ‘복싱 챔피언’이었던 고인에게 누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고인이 게으름을 피우며 성실하지 않게 살았다고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경기는 일본에서 치러졌다. 당시의 일본 관중들이 고인을 응원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 속 고인은 투지를 불태우며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끝내 수건을 던졌지만, 그 전까지는 끊임없이 주먹을 뻗고 있었다. 나는 영상을 끄고 버스 등받이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눈을 감자, 이번엔 고인이 내지른 주먹이 생생히 그려졌다.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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