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방 거두’ 장쩌민 타계로 中 시진핑 1인 지배 강화될 듯

이용성 기자 입력 2022. 11. 30. 23:53 수정 2022. 12. 1.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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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최고 지도자로서 '정치적 병풍' 역할을 했던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이 별세함에 따라 중국 3대 정치 계파 중 하나인 상하이방은 명맥을 유지하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2017년 10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이야기 나누는 장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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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최고 지도자로서 ‘정치적 병풍’ 역할을 했던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이 별세함에 따라 중국 3대 정치 계파 중 하나인 상하이방은 명맥을 유지하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7년 10월 2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9차 공산당 대회 폐회식 도중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시진핑 현 국가주석의 팔을 두드리는 모습. 장 전 주석은 시진핑 주석의 정적 그룹인 상하이방(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의 대부로 꼽힌다. 시진핑 집권 이후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명목 아래 장 전 주석 측근 인물들이 대거 제거되기도 했다.

이는 시진핑 주석 1인 체제에 대한 견제 세력이 한층 더 약해짐을 뜻한다. 이미 지난달 당 대회 때 또 다른 파벌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파의 극적인 몰락이 이뤄진 바 있다.

당시 공청단파 최고위 원로인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당 대회 폐막식에서 퇴장당하고 공청단파 차세대 리더로 평가받아온 후춘화 부총리는 24인의 중앙정치국 위원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이는 공청단파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장쩌민 전 주석의 막후 영향력 아래 상하이방은 중국 정계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장 전 주석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이어받아 중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미국 유럽과도 부드러운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장 전 주석은 2004년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직까지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에게 물려주고 완전히 공직에서 물러난 뒤로도 상하이방의 리더로서 인사와 정책 면에서 상당한 막후 영향력을 행사했다.

장 전 주석은 2002년 후진타오 전 주석에게 당 총서기 자리를, 2003년 국가주석 자리를 물려줬지만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는 2005년까지 유지하며 막후 실력자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부정부패와 전쟁을 선포한 시진핑 주석이 등장하면서 그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시 주석 반대세력을 찍어눌러준 사람이 바로 장쩌민이었지만, ‘상왕’의 존재를 달가워할 리 없던 시 주석은 공산당의 흐름을 보수화로 돌렸으며 부패와의 전쟁을 벌였다.

반부패 작전의 타깃 중에는 장쩌민의 옛 측근이 적지 않았다. 그의 측근이었던 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과 쉬차이허우(徐才厚)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부패죄로 잡혀갔고 인민해방군 서열 1·2위던 궈보슝(郭伯雄)과 쉬차이허우(徐才厚)는 숙청됐다.

2017년 10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이야기 나누는 장쩌민.

상하이방 출신으로 남아 있는 인물은 자칭린(賈慶林) 전국정치협상회의 주석과 한정(韓正) 상무위원 정도다. 하지만 자칭린은 실권이 없고 한정 역시 이제는 상하이방이라기보다는 시 주석이 중용한 실용주의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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