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권한 비웃는 중국…양측 주교 임명 협정 '유명무실'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교황청은 중국과 2018년 주교 임명과 관련한 잠정 협정을 맺는 등 중국과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해 애써왔지만, 현실은 교황청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교황청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중국 당국이 새로운 보좌주교를 임명한 것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충격적이고 유감스러운 소식"이라며 중국 당국의 해명을 요구한 뒤 "유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지난 24일 중국 장시성 성도인 난창시에서 존 펑 웨이자오(56) 주교가 장시 교구 보좌주교로 취임한 것을 두고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중국 당국이 교황청과 협의 없이 주교를 임명한 사례는 그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는 점에서 교황청의 이번 반발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교황청과 중국은 2018년 주교 임명과 관련한 잠정 협정을 맺었다.
중국에서 임명한 주교 후보자를 교황의 승인을 거쳐 서품하고, 중국은 가톨릭교회 최고 지도자로 교황을 인정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전까지 중국은 종교를 국가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주교 임명과 관련한 교황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고 공산당이 운영하는 가톨릭 애국단(CPCA)에서 자체적으로 주교를 임명했다.
이에 따라 중국 교회는 국가의 허가를 받지 못한 이른바 '지하교회'와 '지상교회'로 불리는 국가 공인 교회로 분열돼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교황청과 중국이 맺은 잠정 협정은 중국이 종교를 앞세운 내정 간섭을 꺼린다는 사실과 중국에서 교황을 따르는 신도들이 탄압받고,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일종의 절충안이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교황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교황청과 중국의 주교 임명 관련 잠정 협정은 2018년 9월 22일 중국에서 서명됐으며, 한 달 후 2년 시한의 효력이 발생했다. 2020년 10월 한 차례 갱신됐고, 올해 10월 2년 더 추가 연장됐다.
협정에는 주교 임명과 관련해 중국 당국이 교황청과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으나 중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교를 임명해왔다. 다만 교황이 승인한 교구에 주교를 임명한 것이었기에 교황청은 그동안 이를 묵과해왔다.
그런데 웨이자오 주교를 교황청과 협의 없이 장시 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한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
웨이자오 주교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밀리에 위장 교구 주교로 임명했던 인물이다.
웨이자오 주교가 장시 교구로 옮기면 위장 교구에 주교 공백이 발생한다. 장시 교구는 난창시의 5개 교구를 통합한 것으로, 교황이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주교 임명은 물론 교구 설립과 교구 해산에 대한 권한은 전적으로 교황에게만 있다.
가톨릭 인터넷 매체인 '더 필라'는 "중국 당국이 새 주교를 임명했을 때 교황청은 이와 관련한 사전 협의가 있었다고 둘러댈 수 있었지만 웨이자오 보좌주교 선임 건은 그러한 외교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웨이자오 주교는 2014년 교황으로부터 주교로 임명된 지 불과 몇 주 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계속된 핍박에도 교황만을 섬겼던 웨이자오 주교가 중국 당국이 관할하는 교구의 보좌주교 임명을 받아들인 데 대해 교황청은 "그가 오랫동안 중국 당국으로부터 극심한 압박을 받아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교황청이 중국과 협정을 맺을 때 기대했던 종교의 자유 확대에 대한 바람과는 달리 현재 중국에서는 '지하교회' 성직자들에 대한 탄압과 회유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8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교황청의 성명과 관련한 질문에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더 필라'는 "바티칸의 명백한 분노를 고려할 때 중국 당국은 비웃음이나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든 것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중국은 쉽지 않은 상대지만 대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중국 당국은 교황청과 대화하려는 의지를 거의 보여주지 않고 있다. 또한 '지하교회'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사실만 확인되고 있다.
'더 필라'는 "이번 웨이자오 보좌주교 선임이 교황청을 자극하기 위한 중국의 계산된 행동인지, 아니면 교황청에 대한 중국의 일상적인 무관심의 증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면서 "하지만 어느 경우든 교황청과 중국이 맺은 협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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