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서 예방 중심…‘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정부
노사가 사업장 위험성 평가·대책 수립…내년 대기업 의무화
‘사고 집중’ 중기 등 집중 지원…노동계 “산재 봐주기 우려”
정부가 중대재해 예방체계를 ‘기업 자기규율’에 맡기기로 했다. 규제·처벌 대신 기업 노사가 스스로 진행하는 위험성평가를 중심으로 예방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자기규율에 따르는 ‘책임’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30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 브리핑을 열어 “사후적인 규제와 처벌 중심에서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춰 4대 전략과 14개 핵심과제를 중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새 로드맵은 사업장 자체 위험성평가를 중심으로 기업의 자기규율을 강화한다는 게 핵심이다. 위험성평가란 노사가 사업장의 위험요소를 파악해 개선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제도다. 노동부는 그간 중대재해 예방 행정이 규제·처벌 위주여서 기업이 스스로 예방역량을 키우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노동부는 강제성이 없었던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고, 이를 중심으로 모든 예방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300인 이상 대기업은 위험성평가가 의무화된다. 2024년엔 50~299인, 2025년엔 5~49인 사업장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사고를 분석할 수 있도록 2024년까지 ‘재해 원인 분석·공유 매뉴얼’을 마련하고, 중대재해 발생 시 사고 원인 등을 조사하는 재해조사의견서도 공개한다.
노동부는 기업뿐 아니라 노동자도 안전보건의 책임을 지도록 했다. 노동자도 안전보건의 주체로 법령 등에 명시해 역할과 의무를 부여하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건설업노사협의체 등을 확대하기로 했다.
중대재해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과 건설·제조업, 하청업체 등 분야는 집중적으로 지원·관리할 계획이다. 2024년부터 중소기업에는 ‘진단-시설개선-컨설팅’ 패키지를 제공하고, 2026년까지 안전보건인력을 2만명 이상 양성한다. 건설·제조업에는 센서·웨어러블장비 등 스마트 안전장비 사용을 추진하고, 가장 잦은 3대 사고 유형(추락·끼임·부딪힘)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을 8개로 특정해 특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간다면 우리 일터의 안전 수준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로드맵이 기업의 ‘자기규율 의지’에 지나치게 기댄다고 비판했다. 기존 규제를 폭넓게 완화하는 방향이라 실제 중대재해 감축에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사업장의 1%도 못 미치는 감독, 사망사고 외에는 작동하지 않았던 형사처벌, 사람이 죽어 나가도 말단 관리자 벌금 420만원으로 그쳤던 것이 한국의 규제와 처벌의 실상”이라며 “과연 얼마나 감독과 처벌을 집행해 왔길래 규제와 처벌의 한계를 느낀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자기규율에 따르는 ‘책임’이 사고 발생 후 단계에 집중된 점에도 우려가 나온다. 특히 중대재해의 책임이 분명해도 처벌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노총은 “산재 예방은 의무의 영역이며, 충분한 예방 노력에 대한 입증을 정부가 해주는 것은 잘못하면 산재 수사 봐주기 우려가 있다”며 “고의와 반복된 사망사고에 대해서만 형사처벌하라며 기획재정부가 월권행위로 낸 시행령 연구용역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개악”이라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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