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 누리면서 ‘책임’은 없다는 행안부

김원진 기자 2022. 11. 3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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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용어 통일·부마항쟁 기념곡 개입 등 통제·검열 의혹
부처 수장 이상민 장관 ‘비호’ 받으며 수사선상서도 비켜나
중대본 회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30일 정부서울청사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화물연대, 이태원 사고 및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 화면에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행정안전부의 권한과 역할, 책임을 둘러싼 논란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등 행안부의 고위직들은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권한 행사와 통제에만 나선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행안부가 추진했던 경찰개혁 등 주요 정책의 우선순위를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행안부가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통제와 검열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논란의 시작은 이태원 참사였다.

이태원 참사 직후 행안부가 전국 지자체에 참사 대신 ‘사고’로, 희생자 대신 ‘사망자’로 용어를 통일하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행안부는 “내규상 중립적 용어를 쓰도록 돼 있다”거나 “안내였을 뿐 강제는 아니었다”고 했지만, 받아들이는 지자체 입장은 달랐다. 교부세 등 지방재정 배분 권한이 행안부에 있고, 행안부가 한 해에도 수십건의 지자체 평가를 진행하기 때문에 지자체는 행안부 지침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행안부는 최근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주최한 기념식에 쓰일 곡 선정을 검열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기념재단은 행안부 산하 비영리법인이다. 부마항쟁보상법도 행안부 소관이다. 논란이 커지자 행안부 사회통합지원과는 설명자료를 내고 “검열은 없었다”면서도 “밝고 희망찬 분위기의 선곡을 검토해달라는 의견을 재단에 전달했다”고 했다. 검열이 아니라고 했지만 최소한 검열에 가까운 간섭을 했던 사실은 인정한 셈이다.

행안부는 권한만 누리는 부처가 아니다. 재난 대비·대응에 책임을 지는 곳이다. 행안부는 홈페이지에서 스스로를 ‘재난안전 총괄부처’로 소개한다. 이태원 참사 이후 행안부의 입장은 줄곧 ‘책임 없음’이다. 행안부는 참사 직후 ‘주최 없는 행사’는 행안부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을 줄곧 밝혔다. 현재 행안부는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주요 수사선상에서도 비켜나 있다.

행안부는 공식 발언을 뒤집으면서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지난 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재난관리기관 간 상호통신이 미흡했다”며 재난안전통신망 사용이 부실했음을 인정했다. 행안부는 다음날 낸 설명자료에선 ‘이태원 참사 시 재난안전통신망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활발하게 사용’이라고 밝혔다.

책임 회피의 일선에는 이상민 장관이 있다. 이 장관은 대통령실의 ‘비호’를 받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장관의 행보는 이태원 참사 이전부터 숱한 비판을 받았다. 브리핑을 챙길 대변인실 주요 인사들이 정부세종청사로 출근했는데, 갑자기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자청해 이른바 ‘직원 패싱’ 논란이 일었다. 올해 7월25일이었다. 경찰국 신설에 반발한 총경급 이상 간부들의 회의를 ‘쿠데타’로 규정한 날이었다. 이후에도 연이어 말실수가 이어졌다. 이태원 참사 직후에는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냐” “사고 원인 발표 전까지 선동적인 정치적 주장을 해선 안 된다”는 발언이 논란이 되자 사과했다.

행안부 내부에선 이 장관의 평판이 나쁘지 않았는데 최근 기류가 바뀌었다. 이태원 참사를 기점으로 이 장관을 향한 행안부 직원들의 볼멘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선 “굳이 저런 (논란이 될)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도의적 책임은 장관에게 있다는 말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장관이 발을 빼면서 직원들에게 쏟아지는 압력이 커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에서 추진한 주요 정책은 민방위복 개편이었다. 행안부 내부 문서에는 이 장관의 공식 1호 지시가 민방위복 개편으로 기록돼 있다. 지난 6월 갑작스럽게 민방위복 개편이 추진될 때에도 재난 대응·대비 체계 강화가 시급하지, 민방위복 개편이 우선이 아니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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