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파업 노동자에 위해 가했다면 위법”…진압장비 범위 제시

이혜리·박용필 기자 2022. 11. 3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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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내용과 의미
기쁨의 포옹 대법원이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상대로 국가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상고심에서 파기환송을 결정한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왼쪽)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서로 껴안으며 격려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경찰, 헬기 띄워 최루액 살포
공격 유도해 기중기 손상시켜
대법 “장비, 위법하게 사용”
노란봉투법 제정 명분 커져

대법원이 30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파기환송한 데는 점거파업이나 집회·시위·농성이 설령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국가가 위법한 방법으로 진압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가해자’가 아니라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매김한 셈이다. 이들에게 손배 소송으로 이중의 고통을 가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쌍용차 사건에서 대법원이 ‘부당한 공권력 집행에 맞선 정당방위’라는 법리를 앞세워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파업에 대한 손배 소송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제정 명분도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불법적인 농성을 진압하기 위해 어떤 장비를 사용할 것인지는 경찰이 구체적인 상황과 피해 발생의 위험성 등을 따져 재량으로 정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대법원의 이날 판결은 경찰의 재량 범위와 한계에 관한 구체적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법원은 경찰 장비를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 법에서 정한 ‘용법’과 다르게 사용해 타인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했다면 그 직무집행은 위법하다고 했다. 진압을 위해 해당 장비를 꼭 사용해야 할 상황이 아니었거나 해당 장비의 사용으로 타인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한 수준이 예견되는 정도를 넘어섰다면 위법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노동자들이 생명·신체의 위해를 막기 위해 위법한 진압에 대항하다 경찰 장비를 손상시켰더라도 손배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위법한 공무집행에 맞선 정당방위라는 것이다.

쌍용차 사건의 쟁점은 헬기와 기중기 손상이었다. 경찰은 헬기를 의도적으로 낮은 고도에서 제자리 비행하게 해 공장 옥상에서 농성하던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최루액을 살포했다. 경찰항공 운영규칙, 경찰관 직무집행법, 경찰 장비의 사용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명시돼 있지 않은 방법이었다.

대법원은 “헬기를 이 같은 방법으로 사용해 불법적인 농성을 진압하는 것은 경찰 장비를 위법하게 사용함으로써 적법한 직무수행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그에 대항하는 과정에 이뤄진 노동자들의 헬기 손상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기중기 손상과 관련해선 오히려 “경찰이 스스로가 감수한 위험”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경찰이 노동자들의 기중기 공격을 적극적으로 유도했고, 기중기가 손상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상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기중기를 본래의 용법과 전혀 다르게 농성 진압용으로 사용한 것도 경찰 책임이라고 했다. 여기에다 불법 집회·시위의 경우 이 같은 정도의 장비 손상이 통상 수반된다는 점까지 감안해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 책임을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경찰 부상, 차량과 무전기 손상에 대한 손배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부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원심이 인정한 손해액 대부분이 헬기와 기중기 파손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이날 판결은 큰 틀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노란봉투법 제정 움직임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손배폭탄’으로 대응하는 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 침해라며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당장 이날부터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와 택배노조 등 노동자들이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이혜리·박용필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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