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류된 삶에 가족들도 고통…이제 평범하게 살 수 있겠다”
“다시 평범하게 살 수 있겠구나….”
쌍용차 노동자 채희국씨(52)가 30일 대법원 선고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다. 대법원은 이날 국가가 쌍용차 노동조합 간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채씨는 2009년 쌍용차가 정리해고를 단행했을 당시 정리해고 대상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실직 위험에 처한 동료들을 위해 77일간의 점거농성에 합류했다. 사측은 이를 이유로 채씨를 징계해고했다. 회사와 국가는 채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퇴직금을 가압류했다. 퇴직금의 절반이 묶였고, 나머지 절반은 주택 융자금 등을 갚는 데 썼다.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알아보고 지인에게 손을 벌리면서 버텼다.
채씨는 때때로 술을 마시고 혼자 산에 올랐다. “국가나 회사를 상대로 개인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스스로가 이렇게 무력하고도 하찮은 존재인지 몰랐다. ‘나 하나 사라져도 이 세상에 아무 문제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해고 무효 소송을 거쳐 2013년 복직했다. 2014년엔 가압류도 풀렸다. 그러나 이날까지 집도, 차도 모두 아내 명의로 돌려놓은 상태다.
대법원에서 패소하면 ‘압류된 삶’이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만약 패소하면 두 딸과 아내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이 순간까지도 떠올리지 못했다. 다만 예전처럼 나약한 생각은 하지 말자고만 생각했다”며 “그간 버텨준 아내가 무척 고맙다”고 했다. 이어 “인터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얘기를 하는 건, 아직도 ‘압류된 삶’을 사는 노동자들이 있고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법 선고 직후 쌍용차 노동자들은 대법원 정문에서 각자 손에 들고 있던 ‘국가 손해배상액 30억원’이라고 쓰인 종이를 찢어 하늘로 던졌다.
쌍용차 농성 당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었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마음 졸여 오늘의 재판을 기다렸던 많은 노동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있을 것”이라며 “그간 지지해주고 연대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쌍용차 노동자들과 연대했던 이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시민모금운동단체인 ‘손잡고’의 박래군 대표는 “손잡고가 만들어진 계기도 쌍용차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 조치였다. 13년간의 고통을 이겨내주신 쌍용차 노동자들께 감사드린다”면서 “이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먼저 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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