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 여중생에게 소개한 책 [책방지기의 서가]

입력 2022. 11. 30. 21:00 수정 2022. 12. 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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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 지음, '레이디 맥도날드'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지난주는 서점 옆에 있는 여자 중학교에 가서 특강을 했다.

주제는 '상주에서 좋아하는 일 하며 살기'.

3년 전 연고 없는 경북 상주에 와서 글을 쓰고 서점을 운영하며,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는 자리에 가서 내 이야기를 하며 살고 있다. 상주에서 만난 아이들 대부분은 성인이 되면 고향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대학에 가건, 취업을 하건, 상주가 아닌 도시로 가는 것이 '더 잘 된 거'라 여기는 것 같았다. 부모님이, 선생님이, 선배들이 살아온, 자신들이 봐 온 익숙한 방식대로. 그런 아이들 앞에 '잘살아 보려고 상주에 왔다'고 말하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별로 유난한 것 없는 내 이야기를 150여 명 앞에서 말하게 된 이유였다.

특강이 끝나고 질문 시간,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특강 말미에 확신에 찬 사람들 속에 나를 두지 말고,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각자 있어야 할 자리와 살아가는 모양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추천하고 싶었다. (사실 많은 좋은 책들에 담겨 있는 이야기다) 짧은 시간 고민하고, 아이에게 권한 책이 '레이디 맥도날드'였다.

이 책은 몇 해 전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나왔던 맥도날드 할머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쓴 소설이다. 24시간 영업하는 맥도날드에서 밤을 보내고, 오전에는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잔을 오래 마시며, 꼼꼼히 영어 신문을 읽는 노숙자 할머니. 유별나긴 하지만 프로그램에서 주인공까지 될 수 있었던 데는, 할머니의 과거가 큰 영향을 미쳤을 거다. 유명 대학을 나와 외무부에서 일했던, 잘나갔던 과거.

책에서도 그대로, 맥도날드 매장을 자신의 거실로, 때론 침실로 활용하는 윤자가 주인공이다. 윤자는 현재 자기 삶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모르는 것처럼, 외면하는 것으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모를 리 없다. 끊어지지 않고 질기게도 이어지던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오자, 때때로 과거를 반추하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되짚을수록 자기 인생이 까마득해져서 그녀는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지켜온 일상 속으로 돌아간다. 남루하지만 유일한 트렌치코트를 단정하게 입고, 하루 한 끼 식사로 버터를 넣은 커피를 마시며, 산책하며 햇빛을 쬐고, 가끔 공짜 영화를 보고, 날짜가 지난 영어 신문을 읽으면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내 기준을 들이댔다. '이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자주 질문해야 했다.

탐사보도 속, 실제 맥도날드 할머니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과거 지인들은 그녀의 현재 모습에 놀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안타까워한다. 자기 집에 비어있는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두 발 벗고 나서는 이도 있다. 집이 없어 바깥에서 눕지도 않고 앉아서 자는 이에게 집을 준다니, 티브이를 시청하던 사람들은 모두 '이제 됐다'며 안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할머니는 완강히 거부한다. 그 방식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이의 눈에는 과거에 갇혀 사는 허영심 많은 여자일 뿐이겠지만, 그녀의 특별함이 '평범하다고 일컬어지는 삶의 방식'만 강요하는 이 폭력적인 세계에 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키며 사는 일의 어려움과 귀함을 아는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기를 바란다."

책의 맨 뒷장, 백수린 소설가의 추천사를 읽으며 마음이 울컥거렸다. 용기를 내 질문한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평범함이 얼마나 주관적인 것인지. 우리 각자의 삶은 얼마나 다채롭고,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각자 얼마나 다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또 한번 힘껏 깨닫기 위해, 오늘도 책을 읽고 책을 소개한다. 적어도, 내가 알고 경험한 것 바깥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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