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에 달라붙어 공격한다... 난치병 판 바꿀 ‘항체 치료제’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22. 11. 3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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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성 질병 관리 판 바꿀 ‘게임 체인저’ 항체 치료제

직장 여성 나모(41)씨는 30대 초반부터 편두통으로 고생했다. 메스꺼운 기운이 올라오면 어김없이 편두통이 몰려왔다. 각종 진통제를 집어삼켜도 효과가 없었다. 그랬던 나씨가 고통에서 벗어나 살고 있다. 새로 나온 항체 치료제 덕이다.

◇항체 치료제가 게임 체인저

편두통을 유발하는 물질은 CGRP라는 신경 물질이다. 항체 치료제는 여기에 달라붙어 두통 유발을 차단한다. 질병 유발 물질을 꼭 찍어 달라붙어 제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여러 진통제로 효과를 얻지 못했던 편두통 환자 약 75%가 호전됐다. 현재 앰겔러티라는 편두통 항체 치료제가 지난 9월부터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쓰인다. 미국에서는 먹는 경구용 CGRP 항체약도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용 허가를 위한 임상 시험 중이다. 신경과 의사들은 항체 치료제가 편두통 치료 판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라고 말한다.

골다공증 치료에도 항체 치료제 이베니티 주사제가 등장해 인기를 얻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놓는 주사로 골절 위험이 매우 높은 중증 골다공증 환자의 뼈를 신속하게 재생하는 효과를 낸다. 골 형성을 억제하는 표적 항원 단백질 스클레로스틴에 달라붙어 활동을 못 하게 한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는 암세포 등이 있으면 적군으로 인식하고 항체를 만들어 달라붙어 싸운다. 그 초병 역할을 면역세포B가 한다. 이후 면역 주력군 T세포가 달려와 적군을 물리친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 못하면 암이 자란다. 항체 치료는 항체를 만드는 면역세포B 기능을 정밀화시키거나 기존 항체에 무기를 붙여서 사멸 효과를 높이는 방식이다. 적의 급소만 공격하기에 약물 투여에 따른 부작용이 적다.

◇항원-항체 면역학 전성 시대

항체 치료제가 질병 발생 요인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는 무기로 인정받으면서 난치성 암, 자가면역 질환, 류머티즘 관절염 등 의학 전반에 쓰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이 사용 승인한 항체 치료제가 100번째를 넘겼다. 최초의 항체 치료제가 나온 지 36년 만이나, 최근 5년에 50개가 나올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말기 폐암 환자에게도 효과를 내어 수명을 연장하는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도 항체 작동 원리를 이용한 치료제다. 간암과 대장암 표적항암제 아바스틴, 자가면역 질환의 휴미라도 항체 치료제다. 이들 약제는 국내 최다 판매 약물 앞 순위를 휩쓸고 있다. 2019년 세계 의약품 매출 상위 20개 가운데 9개가 항체 치료제다. 총 매출액은 750억달러(한화 약 100조원)에 이른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 약물 발견은 분석했다.

유방암세포 표면의 특정 단백질에 달라붙어 암세포 증식을 막는 유방암 블록버스터 허셉틴도 항체 치료제고, 세계 최초 알츠하이머병 치매 치료제 아두헬름도 치매 유발 물질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표적으로 한 항체 치료제다. 현재 진행 중인 항체 치료제 임상 시험이 900건에 이른다.

최근에는 면역 주력군인 T세포에 적을 인식하는 항체를 붙여서 암세포를 주력군인 T세포가 직접 공격하는 치료법(카티,Car-T)도 나왔다. 이를 통해 난치성 혈액암이 한 번 투여로 사라지는 효과를 내고 있다.

카티 치료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김석진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요즘은 항체 기능을 활성화하는 치료를 넘어서, 항체를 만드는 면역세포B에 전쟁 주력군 T세포를 붙여주는 항체를 만들어 적군을 물리치는 초병과 주력군이 동시에 출격하는 치료가 개발되고 있다”며 “앞으로 난치성 질병과의 전쟁이 항원·항체 면역학 승부로 결정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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