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빈곤서 벗어나게 한 지도자"

이유진 기자(youzhen@mk.co.kr) 2022. 11.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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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외신 반응

"중국을 세계 시장으로 인도한 인물."(뉴욕타임스)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의 전성기를 이끈 지도자."(블룸버그) "10년간의 폭발적인 경제 개혁을 지원한 리더."(AP통신) 외신들은 30일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의 사망 소식을 다루며 중국의 급속 성장기를 이끈 전 지도자의 일생을 조명했다. 장 전 주석은 1989년부터 2004년까지 집권한 장수 지도자이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원칙을 설계대로 실행한 후계자라는 평가가 공통적이다.

AP통신은 장 전 주석에 대해 "1989년 (톈안먼 사태) 혼란 이후 분열된 공산당을 이끌기 위한 (덩샤오핑의) 놀라운 선택"이었다면서 그가 시장 지향적인 개혁을 통해 중국을 고립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그는 1997년 영국의 홍콩 반환,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굵직한 중국 현대사의 변곡점에서 중국을 지휘한 지도자였다. 특히 WTO 가입은 외국인이 중국에 투자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하지만 민주주의나 인권 측면에서는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장 전 주석은 반대파를 가혹하게 진압했다. 유혈사태로 막을 내린 톈안먼 사태를 진압한 당사자였고, 인권·노동·민주화 운동가들을 투옥했다. 그는 파룬궁을 탄압하고, 1999년 수천 명의 파룬궁 신자들을 구금했다.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나 그림자도 짙었다. 본인의 고향인 상하이 등 해안도시에 자원을 집중 투입해 해안도시와 내륙도시 간 불균형을 조장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블룸버그는 "그가 경제 성장과 개방의 시대를 관장했지만, 그 시대는 동시에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대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개인으로서 장 전 주석은 중국 근현대사에서 흔치 않은 '다채로운' 정치인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딱딱하고 웃지 않는 중국 지도자에 대한 선입견을 깬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그는 71세였던 1997년 하와이를 방문해 1㎞ 이상을 수영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2001년 베이징을 찾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즉석 듀엣곡 '오 솔레미오'를 부르고, 2002년 미국에서의 국빈만찬에서는 로라 부시 영부인과 '문 리버' 등 미국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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