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관치 금융의 폐해… 금리 잡으려다 소비자 잡을 판

강길홍 2022. 11. 30. 19: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국, 기준금리는 올리면서
은행에 예금금리 인상 제한
자금줄 막혀 대출창구 폐쇄
29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걸린 정기예금 금리 안내문.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행진을 이어가면서 대출금리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반면 은행들의 수신경쟁과 맞물려 연일 상승세가 이어지던 예금금리는 오히려 하락세로 돌아섰다. 금융당국의 수신경쟁 자제 당부의 약발이 먹힌 모습이지만 금융소비자들은 분통을 터트린다.

◇기준금리 인상에도 예금금리는 하락= 30일 금융감독원 금융상품통합비교공시에 따르면 은행권 정기예금(1년만기·1000만원 기준) 최고금리는 연 5.10%를 제공하는 SC제일은행의 'e그린세이브예금'이다. SC제일은행을 제외하면 5%를 넘는 금리를 찾기 어렵다.

5대 시중은행 중에서는 우리은행 'WON플러스예금'이 4.98%로 가장 높다. 이 상품은 지난 13일 연 5.18%까지 금리가 올랐지만 최근 5% 밑으로 내려갔다. 국민은행의 'KB 스타 정기예금'도 우대금리를 포함해 연 5%까지 올랐던 금리가 4.82%로 되레 떨어졌다. 하나은행의 '하나의정기예금' 우대금리 요건을 충족하면 5.00%의 금리를 제공한다.

한은은 지난 2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지만 주요 은행의 예금금리는 오히려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10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을 때는 당일 경쟁적으로 예금 금리를 올린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주요 은행들은 여전히 예금금리 인상 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금리인상 자제 압박= 은행들의 예금금리 상승세가 멈춘 것은 금융당국이 은행들을 향해 금리 인상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기준금리 인상 다음날인 지난 25일 금융위 간부들과 가진 '금융시장 현황 점검회의'에서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린 당일에 금융상황점검 회의를 개최하고 "기준금리 인상폭이 예상에 부합한다"고 평가하면서도 "역머니무브 현상이 최소화되도록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은행으로의 급격한 자금흐름이 금융시장 전반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지난 10월에만 은행권 정기예금으로 56조2000억원이 몰렸다. 은행채 발행이 묶인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고금리 상품을 쏟아내면서 저축은행과 비슷한 수준까지 금리가 올라간 결과다.

은행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카드·보험·저축은행 등 2금융권은 유동성 부족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저축은행들은 고객의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자칫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대출금리가 덩달아 오르는 것도 문제다. 한은이 29일 발표한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 통계에 따르면 10월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가중평균·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5.34%로 한 달 새 0.19%포인트 높아졌다. 2012년 6월(5.38%) 이후 10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예금금리는 은행 대출의 원가인 셈인데 일정 수준의 영업비용과 이자마진이 더해지면 대출금리는 따라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새로 대출은 받는 고객은 물론 기존에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은 고객도 금리 부담이 높아진다.

결국 금융당국이 칼을 빼들고 은행들의 금리 인상 경쟁을 막아섰다. 자율적인 준수를 강제하고 있지만 최근 각종 제재와 검사로 금융권을 압박하는 금융당국의 처사를 보면 강제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관치금융의 폐해' 쌓인다= 금융당국이 예금 금리 인상 자제를 압박하면 은행으로선 대출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면 은행의 자금중개 능력이 위협받아 결국 자금의 원활한 흐름에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금융당국은 대환대출 플랫폼 출시 등 금융회사 경쟁을 유도해 대출금리를 낮추려는 정책도 펼치고 있다. 기준금리는 올리면서 예금과 대출 금리는 억제하는 모순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신관치 금융'은 시장의 왜곡을 가져오고, 결국은 소비자들의 피해로 돌아가게 된다. 법정 최고금리응 연 20%로 낮추면서 대부업체나 저축은행들이 대출을 줄이는 바람에 서민들이 급전을 빌릴 창구가 없어진 게 단적인 사례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들은 은행채 발행이 막히면서 예금금리를 올려 자금조달에 나설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이를 막으면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며 "은행채를 발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강길홍기자 slize@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