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사망…개혁·개방 계승 경제발전 견인

2022. 11. 30. 19:4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중국의 제3대 최고 지도자였던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30일 사망했다.

장 전 주석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당 총서기의 뒤를 이어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에게 발탁돼 당 총서기에 오른 뒤 15년 동안 중국 최고 권력을 움켜쥔 채 중국 경제 발전을 지휘했다.

이는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16大)에서 중국공산당 당헌(黨章)에 정식으로 삽입됐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사망했다고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가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30일 낮 12시 13분(현지시간) 장 전 주석이 백혈병 등으로 인해 상하이에서 치료를 받다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1995년 11월 15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는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이명수 기자] 중국의 제3대 최고 지도자였던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30일 사망했다. 향년 96세.

신화통신에 따르면 장 전 주석은 30일 낮 12시 13분(현지시간) 백혈병 등으로 인해 상하이에서 치료를 받다 별세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등의 공동 발표에 따르면 장 전 주석은 백혈병으로 인해 장기 기능이 쇠약해져 응급처치했으나 이날 숨을 거뒀다.

당 중앙위 등은 "장쩌민 동지의 서거는 우리 당과 군, 각 민족 인민에게 있어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라며 "당 중앙은 모든 사람에게 슬픔을 힘으로 바꾸고 동지의 유지를 계승하며 실제 행동으로 애도를 표하기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사망했다고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가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30일 낮 12시 13분(현지시간) 장 전 주석이 백혈병 등으로 인해 상하이에서 치료를 받다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2000년 11월 15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브루나이 오키드 가든 호텔에서 김대중 대통령과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 [연합]

장 전 주석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당 총서기의 뒤를 이어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에게 발탁돼 당 총서기에 오른 뒤 15년 동안 중국 최고 권력을 움켜쥔 채 중국 경제 발전을 지휘했다.

1989년 11월 덩샤오핑이 맡고 있던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이어 1993년 3월 국가주석까지 맡으며 중국 최초로 당(黨)·정(政)·군(軍)의 모든 권력을 거머쥔 뒤 2003년까지 중국 최고 지도자로 재임했다.

톈안먼 사태라는 격동을 거쳐 중앙 정치 무대에 등장한 고인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며 중국의 경제 도약을 일궜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사망했다고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가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30일 낮 12시 13분(현지시간) 장 전 주석이 백혈병 등으로 인해 상하이에서 치료를 받다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1995년 11월 16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울산 현대자동차를 방문, 관계자와 대화하는 모습. [연합]

또한 최고 지도자 재임 중 굵직굵직한 정치, 경제, 외교의 이정표를 세웠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유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홍콩(1997년)과 마카오의 반환(1999년)이 그의 임기 동안 이뤄졌다.

그의 대표 사상은 '3개 대표 이론'이다. 전통 사회주의 국가에서 배척받는 자본가 계급을 끌어안는 것이 골자다. 이는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16大)에서 중국공산당 당헌(黨章)에 정식으로 삽입됐다.

은퇴 이후에도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의 원로로서 중국 정계에 깊숙이 개입하며 현역 지도자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기에는 상하이방이 시 주석의 '정적세력'으로 분류되면서 정치적 입지가 약화하기도 했다.

지난달 열린 제20차 당 대회에 불참하면서 건강 이상설이 또 한차례 제기된 바 있다.

husn7@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