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한달

한겨레 2022. 11. 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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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태원 참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숨&결] 박성민 |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

158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걷다 세상을 떠나고 한달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번 이태원 참사 희생자 중엔 나보다 몇살 어린 동생 또래가 가장 많았다는 점에 마음이 더 무너졌다.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놀러 가는 것은 청년들에겐 익숙한 ‘문화’다. 평소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나조차 이번에 이태원에 한번 놀러 가볼까? 하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날 다른 약속이 없었다면, 이태원에 갔을지 모른다. 참사 직후 희생자들에게 향했던 ‘왜 그런 곳에 갔냐’는 말도 안 되는 비판과 조롱이 나를 향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았을 뿐이고, 그 자리엔 그들과 나뿐 아니라 누구도 있었을 수 있다.

그저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부채감과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공적 조직의 허술함에 대한 절망, 책임 회피에 급급한 이 정부 고위직들에 대한 분노…. 참사 이후 내 속의 감정은 날마다 모양을 달리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묻고 또 묻던 시간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이 떠나간 이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하다. 슬픔을 축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하는 것, 참사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 그리고 책임 있는 자들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사후 대처라도 제대로 했더라면 원망스러운 마음이 조금은 줄었을까. 하지만 이 참사를 대하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는 비겁했고, 부적절했고, 미숙했다. 마음속에 부채감과 미안함을 넘어 분노까지 얻게 된 이유다. 윤 대통령은 참사가 일어나고 며칠 뒤 죄송한 마음을 표했지만 진정성 있는 공식 사과라고 볼 수 있는가를 두고선 의견이 갈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태원 참사를 주제로 한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농담 따먹기를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를 이끄는 이상민 장관은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하긴커녕 “경찰 병력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가 아니었”다는 뻔뻔함을 보였다. 심지어 범정부 재난대책 수립 티에프(T/F) 단장까지 맡아 버티고 있다. 최근에는 유가족 간의 연락이나 접촉을 정부가 고의로 막은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정부는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며 경찰과 소방 실무자들만 열심히 수사하고 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입니다”라던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책임이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건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무한 책임’은 그저 공허한 수사였던 건가. 국가의 역할을 묻는 유족들의 눈물에 대통령은 뭐라고 답할 건가. 한달이 지났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무한 책임’을 통감하며 통렬히 반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이 현실이 차라리 꿈이었으면 한다. 책임이 아닌 권력만을 누리는 권력자들의 모습만 봐야 하는 국민은 불행하다.

신형철 평론가는 <인생의 역사>에서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며 기타노 다케시의 말을 인용한다. “5천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건 일어났다’가 맞다.”

‘내가 뭔 잘못을 했냐’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권력자들은 알기나 할까. 한 사람이 사라지는 일은 한 우주가 사라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사랑하며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우주도 함께 파괴되는 일이 바로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표현할 길이 없어 언어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그들은 모를 것이다. 이 참사가 얼마나 무겁고 비통한 일인지 안다면,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확실한 사법적 책임’이라는 비정한 말만 강조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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