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닥쳤는데…비상경제‘민생’회의 체감 온도는? [편집국에서]

김진철 2022. 11. 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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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치솟는 물가]

지난 10월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에서 장을 보러온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상점 TV 화면에 윤석열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가 생중계로 방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김진철 | 경제산업부장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연탄광에 연탄이 들어차고 마당 한편에 김장용 배추가 쌓였다. 연탄과 김장김치는 서민들이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재였다. 어른들은 연탄을 쟁여놓고 김장을 마쳐야 겨울을 무탈하게 넘기리라고 마음 놓곤 했다. 1인당 국민소득 2천~3천달러이던 1980년대 이야기다. 아직 전국 8만여가구는 연탄을 쓰고 있다고 한다. 산동네로 연탄을 실어 나르는 봉사활동이 펼쳐지고 ‘사랑의 김장’을 나누는 기업이 아직 적지 않다. 그나마 훈훈한 장면들이 철마다 연출되곤 한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세찬 바람이 불어닥치며 여지없이 겨울이 왔다. 연탄과 김장김치로 월동하는 시대도 아닌 터에, 서민과 저소득층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간다. 먹거리 가격도 오르고 전기·가스요금도 오르고 대출 이자도 오르는데 소득은 늘지 않는다.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앞날의 어려움을 전망하는 자잘한 숫자들을 처절하게 피부로 실감하는 국면으로 가고 있다. 필수재 중심으로 물가가 급등하며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은 결정적 타격을 받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ㄱ씨는 월 소득 170만원인데, 식료품비로 60만원을 쓰고 있었다. 전기·가스요금과 관리비·통신비로 고정적으로 나가는 약 25만원, 월세 40만원을 빼고 나면 45만원이 남는다. 고정지출이 10%만 늘어나도 여윳돈은 30만원으로 쪼그라든다. <한겨레>가 최근 벌인 ‘나의 물가상승률’ 기획 설문조사에 ㄱ씨는 이런 자신의 처지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에 육박하는데 6%의 무게감이 모두에게 같을 수는 없다. 식품과 에너지를 중심으로 물가 상승압력이 거센 터여서 누군가에겐 미풍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삭풍으로 휘몰아치기 마련이다. 물가 충격이 그 어느 때보다 차별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민생회의가 11차례 열리고 생방송까지 했는데, ‘민생’에서 ‘ㄱ씨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할’ 중동 특수와 부동산 규제완화 정도밖에 없다. 눈보라가 몰려오고 있는데 한가한 소리들이나 하고 있었던 까닭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ㄱ씨 같은 저소득층·서민들의 상황을 제대로 구분해서 보고 있지 않아서다. 당장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 대응만 봐도, 대통령과 장관들은 준엄하게 “불법 엄단”만 되뇔 뿐 리터당 1900원에 육박하는 경유 가격이 지입차주가 바탕을 이루는 한국 화물운송 시장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직시하지 않는다.

<한겨레>가 ‘나의 물가상승률’ 기획을 한 것은, 구체적인 현실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인플레이션 타격이 집중되는 이들의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지 않고 적절한 정책을 구사할 수는 없다. 실제로 나이대와 소득별로,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 급등이 미치는 물가 영향은 달랐다. 고령층일수록, 소득이 적을수록 식료품 가격 인상 타격이 더 컸다. 전기·가스·연료비 상승이 고소득층에게 미치는 영향은 저소득층에 견줘 확연히 작았다.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현실이지만, 정부 통계로는 취약계층의 체감 물가를 정확히 들여다볼 길이 없다.

1960~70년대에는 ‘연탄 파동’이 여러차례 있었다고 한다. 수요가 급증하고 공급이 달리고 수송 문제가 발생하면 ‘연탄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부르는 게 값’이라고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파동의 원인이 정부 실책 탓이었을지언정, 박정희 대통령은 직접 긴급회의를 주관하고 내각에 지시했다고 한다. “장관직을 내놓을 각오로 조속한 시일 안에 필요량의 연탄공급 계획을 실천하라.” 대통령 한마디에 태백선·영동선이 뚫려 석탄수송을 원활히 하고 연탄운반 종사자들에게 야간통행증을 줬다고 한다. 독재자의 권위적 지시였으나, 국민은 최소한 서민 삶에 대한 관심의 증표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김장과 연탄만이 아니다.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 지금은 어려워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국가와 사회, 정부와 공동체가 곤란한 이들의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리라는 최소한의 위안은 있어야 이 추위에 맞서고 견딜 힘을 낼 수 있다.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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