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고인돌’ 사태, 고려인 유적에도…치장공사에 뭉개진 역사

한겨레 2022. 11. 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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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관련 행사를 마친 <한국방송> (KBS) 출연자들과 함께 고려인 최초 정착지가 있는 우슈토베에 다녀왔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극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들이 토굴을 파고 첫해 겨울을 보낸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일행들은 이어 낯선 중앙아시아 땅에서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 영광의 역사를 쓴 고려인들에 관해 얘기하며 토굴이 있는 바스토베 유적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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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강제이주 고려인, 토굴 파고 생존역사
민간단체, 기념비·치장공사에 토굴 굴착기로 뭉개
2019년부터 시작된 공사는 토굴 원형 보존과 전문가 고증을 통한 복원이 아닌 표지석을 중심으로 보도블록을 까는 등 주변 치장공사 위주로 진행됐다. 드론으로 찍은 사진을 통해 최우선으로 소중히 보존되어야 할 토굴 유적지에 오히려 건축 자재가 쌓여 있는 등 원형 훼손이 시작된 것을 볼 수 있다. 김상욱 제공

[왜냐면] 김상욱 | 고려문화원장

최근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관련 행사를 마친 <한국방송>(KBS) 출연자들과 함께 고려인 최초 정착지가 있는 우슈토베에 다녀왔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극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들이 토굴을 파고 첫해 겨울을 보낸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알마티 출발 3시간여 만에 우슈토베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1937년 고려인들을 태운 기차가 도착했을 역과 철길을 둘러봤다. 마침 화물열차가 당시와 마찬가지로 기적소리를 내며 플랫폼으로 들어오기에, 재빨리 마이크를 꺼내 그 소리를 녹음기에 담기도 했다. 일행들은 이어 낯선 중앙아시아 땅에서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 영광의 역사를 쓴 고려인들에 관해 얘기하며 토굴이 있는 바스토베 유적지에 도착했다. 그 순간, 우리 눈을 의심할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85년 전 이역만리에 도착한 고려인들이 손으로 파내 만들었던 토굴 유적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대신 옆에 굴착기로 파낸 직사각형 모양 구덩이와 파낸 흙을 주변에 뿌리고 다진 흔적이 있을 뿐이었다. 일행들 모두 눈앞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사라져 버린 최초 정착지 토굴 유적지의 2022년 현재의 모습. 토굴은 묻혀버렸고 그 옆에 새로 판 직사각형의 구덩이와 굴착기의 무한궤도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김상욱 제공
고려인 최초 정착지 토굴 유적지 표지석. “이곳은 원동에서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이 1937년 10월9일부터 1938년 4월10일까지 토굴을 짓고 살았던 초기 정착지이다”라고 적혀 있다. 김상욱 제공

알마티로 돌아온 뒤 이런 사실을 <고려일보> 총주필에게 알렸다. 그는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이 담담한 표정으로 최근 ㈔통일문화연구원이라는 한국의 민간단체가 진행한 공사들로 인해 우슈토베 고려인들이 난처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전해줬다.

현지인들에게는 고려인 공동묘지로 알려져 있던 이곳에 갑자기 도로포장 공사와 함께 조형물이 세워지자, 현지 카자흐인들이 비포장 상태로 방치된 자신들의 마을길과 대비해 불만을 제기했다는 얘기였다. 올여름 고려인 항일 독립영웅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추모의 벽’ 조형물도 좋은 취지와 다르게 현지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고 했다. 현지어로 ‘언덕들의 머리’로 불리는 이곳은 카자흐인들도 신성시하는 곳인데, 하필 이곳에 한국의 독립영웅을 기리는 조형물을 세워 논란이 되고 가축들 통행에 방해된다며 유목민들이 불만을 나타낸다고 한다. 현지인들과 소통부족이 고려인들을 되레 난처하게 만든 셈이다.

표지석 뒤편 토굴 모습. 이때는 이미 ‘기념공원 조성사업’이 시작돼 토굴 원형에 변형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김상욱 제공

물론 이런 공사는 관할 지방정부 허락을 받은 사업이겠지만 문제가 되면 새로 바뀐 단체장에 의해 언제든지 철거될 수도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순간 연해주 독립운동 유적지마다 한국 민간단체들이 기념비 세우기 촌극을 벌인 일이 떠올라 씁쓸했다.

바스토베 언덕에 오르면 발아래 쪽엔 고려인 공동묘지와 토굴 유적지가 보이고, 저 멀리서는 가을이면 황금물결이 춤추는 논이 장관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이런 광경을 볼 수 없게 됐다. 논과 공동묘지는 그대로이나 척박한 황무지에 관개수로를 파고 논을 만든 85년 전 고려인 동포들이 살았던 토굴 유적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고려인 추모공원 겸 한-카 우호공원’ 사업을 주도하는 ㈔통일문화연구원은 독립운동가를 추모하는 조형물을 왜 굳이 외진 이곳에 세웠을까? 라는 질문은 차치하더라도 토굴을 굴착기로 밀어버린 행위는 고려인들의 호된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그 공사비와 향후 관리비로 막대한 국가예산을 요청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래서였을까. 우슈토베를 찾은 그날 하늘은 역사에 무지한 후손들을 나무라기라도 하듯 잔뜩 찌푸린 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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