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G2로 끌어올린 지도자…장쩌민 전 중국 주석 사망

이유진 기자(youzhen@mk.co.kr) 2022. 11. 3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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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후계자로 중국서 장기집권
中고속성장 견인· 서방과 우호적 관계 유지
시진핑 집권 후 세력 급격히 약화
10월 당대회 때도 불참해 눈길
구심축 잃은 상하이방 지위 휘청
시진핑 1인 지배체제 더 공고해질 듯

장쩌민 중국 전 국가주석이 30일 병환으로 사망했다고 중국 관영 중앙(CC)TV가 보도했다. 향년 96세. 이날 CCTV와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장 전 주석은 상하이에서 백혈병 등으로 치료를 받다 30일 낮 12시(현지시간)경 별세했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 주석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당시 국빈 방문으로 백악관을 찾은 장 주석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장쩌민은 지난 10월 열린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 불참해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다. 지난 2019년 국경일 70주년 기념행사에서 후진타오 전 주석과 연단에 오른 것이 마지막 공개 행사였다.

장쩌민 전 주석은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19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 중국의 고속성장을 이끈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85년 상하이 시장, 1987년 상하이시 당 서기장을 맡았던 장 전 주석은 1989년 톈안먼 사태 진압 이후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지목됐다. 이후 1989년부터 2002년까지는 중국 공산당 총서기, 1990년~2005년까지는 중국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았다.

그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충실히 따랐던 후계자로, 고립됐던 중국이 세계 무대로 나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재임 기간동안 중국은 한국(1992년) 등 여러 나라와 수교를 맺었고,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세계와의 교역을 늘리고, ‘세계의 공장’역할을 맡아 제조업 위주로 경제 규모를 빠르게 늘려갈 수 있었던 기반도 장 전 주석 시절에 다져졌다.

2003년 후진타오 전 주석에게 권력을 넘긴 이후에도 장 전 주석은 막후에서 상하이 출신, 본인의 측근들을 모은 정치 조직인 ‘상하이방’을 통해 상당한 권력을 행사했다.

장 전 주석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된 것은 후진타오 전 주석의 후임인 시진핑 현 국가주석이 집권하고 나서부터다. 시 주석이 취임 이후 ‘반부패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시행하면서 후진타오 전 주석 때까지도 유지되던 장 전 주석의 정치 기반이 흔들렸다.

시진핑 주석의 ‘상하이방’숙청 작업은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확정한 당대회 직전에는 장쩌민 계열로 분류됐던 푸정화 전 사법부장과 쑨리쥔 전 공안부 부부장 등 상하이방 정치인들이 체포되거나 중형을 선고받으며 잇따라 숙청됐다. 당시 시진핑 주석은 생일이 한달 반이나 지난 장쩌민 전 주석에 뒤늦은 생일 화환을 보내고, 이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홍콩 명보는 “당의 단합과 화합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원로들이 당대회 개막식에 초대될 것”이라고 보도했으나, 장 전 주석은 건강 문제로 당대회에는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중국 정치 원로이자 상하이방의 구심점이었던 장 전 주석의 사망으로 시진핑 주석의 ‘1인 지배 체제’ 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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