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이] 사회초년생 하이퍼 리얼리즘 멜로 '그 겨울,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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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어떤 존재들에게 유독 가혹한 계절이다.
인생의 한 챕터를 겨울에 비유한 영화 '그 겨울, 나는'(감독 오성호)은 아직 뿌리내릴 곳을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젊은 연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급'이 어느 정도는 맞아야 하지 않냐? 요즘 애들은 그런 거 다 따져가면서 잘만 만나던데"라는 엄마의 말은 서로를 비참하게 할 뿐이다.
경학과 혜진이 마주할 젊고 시린 현실은 언제쯤 따뜻해질 수 있을지, 그들이 무사히 겨울을 건너가길 넌지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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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들에게 찾아온 인생의 겨울
누구나 공감 가능한 청춘, 연인 이야기
'올해의 배우상'(권다함) 등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그룹 포미닛 출신 권소현의 성공적 데뷔까지 그>
겨울은 어떤 존재들에게 유독 가혹한 계절이다.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추위를 견뎌야 하는 삭막한 날들은 때로 넘기기 어려운 고비가 된다. 인생의 한 챕터를 겨울에 비유한 영화 ‘그 겨울, 나는’(감독 오성호)은 아직 뿌리내릴 곳을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젊은 연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권다함과 신예 배우 권소현이 만나 호연을 보여준다.
영화는 가난한 취업 준비생인 경학(권다함)과 혜진(권소현) 커플이 한집에서 동거하며 공부하고 사랑하는 모습에서 출발한다. 소소하지만 행복했던 그들의 일상도 잠시,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경학은 엄마의 숨겨진 빚 2,000만 원을 갚아야 한다는 전화를 받는다. 경학은 급한 불부터 끄고자 배달 라이더를 하기로 결심하고. 혜진은 그런 경학을 못마땅해 한다.
경학이 점차 시험공부에 손을 놓는 사이 혜진은 그렇게 바라던 공기업 최종 면접을 분위기 좋게 마쳤다. 하지만 또다시 불합격. 혜진은 중소기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혜진은 점차 자신과 다른 입장에 처한 경학이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만을 바란다. “경학아, 내가 인강 끊어줄게. 지금 당장 돈 벌 생각하지 말고 미래를 생각해야지.” 혜진의 엄마도 그런 경학을 못마땅해 한다. “‘급’이 어느 정도는 맞아야 하지 않냐? 요즘 애들은 그런 거 다 따져가면서 잘만 만나던데”라는 엄마의 말은 서로를 비참하게 할 뿐이다. 둘의 갈등은 결국 폭발하며 결말로 치닫는다.
요즘 말로 ‘하이퍼 리얼리즘’에 가깝다. 청춘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그린 이 영화는 100분이란 러닝타임을 현실적인 에피소드가 주는 소소한 재미로 채우고, 끝내는 씁쓸한 뒷맛을 전한다. ‘배달 라이더’ 경학이 마주한 삶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꿀콜’만 골라잡는 경력 많은 동생, 19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 그렇게 힘들게 배달을 다녀왔는데 어려운 곳도 가라고 자꾸 닦달하는 사장까지. 중소기업에 첫 출근한 혜진을 통해서는 사회 초년생이라면 보편적으로 느낄 어려움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첫 출근 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USB를 끼우는 단순노동에 동원되기도 한다. 기대와 어긋나는 현실을 마주한 혜진이 겪는 실망감과 난감함이 섬세하면서도 고스란히 녹여져있어 두 인물의 감정에 쉽게 몰입하며 보게 된다.
영화는 청년 세대가 마주한 고통을 섣불리, 무책임하게 위로하지 않는다. 초반부 취준생 커플의 모습에서 출발한 영화는 사회라는 무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어느 커플을 갈라놓은 굴곡을 건조하게 조명한다. 청년의 현실을 그린 여타 이야기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훌륭한 두 주연과 조연 배우들의 연기, 직설적인 대사와 현실적인 에피소드로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 후반, 공장에서 맞닥뜨린 쓴 현실로 더욱 절망에 익숙해지고 무뎌진 경학이 내린 선택은, 결코 해피엔딩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인생의 혹한기를 지나는 실제 청년들의 삶 역시 쉽게 ‘잘 될 거야’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여전히 존재하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오버랩되며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빚이라는 매개체로 인해 삶이 큰 고통으로 빠지는 경학을 온몸으로 표현해낸 권다함의 연기는 놀라움을 준다. 권소현 역시 현실에 존재할법한 취업 준비생 혜진 역할을 잘 소화해낸다. 이들은 오래 연애한 현실 연인의 모습으로 인상적인 호흡을 보여준다.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다. 경학의 차가운 현실 속에서 “괜찮아, 천천히 해”라며 경학을 감싸주는 공장 아저씨들에게서는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경학과 혜진이 마주할 젊고 시린 현실은 언제쯤 따뜻해질 수 있을지, 그들이 무사히 겨울을 건너가길 넌지시 바라본다.
제목 : 그 겨울, 나는
각본/감독 : 오성호
출연 : 권다함, 권소현 외
제작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배급 : ㈜더쿱디스트리뷰션
장르 : 멜로
러닝타임 : 100분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2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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