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사망 … 톈안먼 사태 이후 덩샤오핑 후계자 등극

오남석 기자 2022. 11. 3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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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전 중국 국가주석에 이어 10년 간 중국을 통치한 장쩌민 전 주석이 30일 사망했다고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가 보도했다.

당시 상하이시 당서기를 맡고 있던 장 전 주석은 시위 사태에 분명하게 반대하고 정부를 옹호하면서 당시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의 눈에 들었다.

장 전 주석은 중국 개혁·개방을 완성시킨 지도자로 평가받지만 톈안먼 사태 당시의 처신, 집권 시절 파룬궁 탄압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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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타계한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2년 11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8차 공산당대회 개막식을 지켜보는 모습. AP 연합뉴스

덩샤오핑 이어 개혁·개방 이끌며 경제대국 실현

톈안먼 사태 책임론, 파룬궁 탄압 등으로 비판받아

덩샤오핑 전 중국 국가주석에 이어 10년 간 중국을 통치한 장쩌민 전 주석이 30일 사망했다고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가 보도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장 전 주석은 이날 낮 12시 13분(현지시간) 백혈병 등으로 인해 상하이에서 치료 받다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등의 공동 발표에 따르면 장 전 주석은 백혈병으로 인해 장기 기능이 쇠약해져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이날 숨을 거뒀다.

장 전 주석은 마오쩌둥, 덩샤오핑의 뒤를 이은 중국 제3세대 최고지도자이자, 덩샤오핑이 길을 놓은 개혁·개방 노선을 이어받아 중국을 경제대국 자리에 올려놓은 인물로 꼽힌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유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홍콩(1997년)과 마카오의 반환(1999년)이 그의 임기 동안 이뤄졌다.

1926년 8월 장쑤성 양저우에서 태어난 장 전 주석은 어린 시절 엘리트 교육을 받아 시문과 음악에 능했고 피아노와 기타, 중국 전통 현악기 얼후 등을 연주할 줄 알았다. 재임 중 정상 외교 현장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영어에 능해 공식 석상에서 자주 영어로 연설하곤 했다.

평범한 기술관료였던 장 전 주석이 최고지도자 반열에 오른 결정적인 계기는 1989년 유혈 진압으로 막을 내린 톈안먼 사태였다. 당시 상하이시 당서기를 맡고 있던 장 전 주석은 시위 사태에 분명하게 반대하고 정부를 옹호하면서 당시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의 눈에 들었다. 그러나 당시 장 전 주석은 메가폰을 들고 거리로 나가 학생 시위대와 대화하는 등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톈안먼 사태가 유혈 진압으로 끝난 뒤 덩샤오핑은 자오쯔양 당시 총서기를 경질하고 장 전 주석에게 총서기와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맡겼다. 장 전 주석은 1993년 양상쿤에 이어 국가주석을 차지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장 전 주석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충실히 이었다. 공산당이 노동자·농민 뿐 아니라 자산가·지식인의 이익까지 대변해야한다는 ‘3개 대표론’을 주창하며 시장경제 도입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경제 전문가 주룽지를 총리로 발탁해 계획경제 체제에 안주하던 금융 및 국영기업 개혁을 맡겼다.

국내 정치면에서는 조정과 타협에 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혁명 원로나 고위 지도자 자제들의 모임인 태자당 인사들과 협력했다. 장 전 주석이 당과 정부, 군에 상하이 출신 인사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상하이방이 만들어졌다.

2004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에서 물러나면서 최고지도자 자리에서 내려왔으나, 상하이방을 토대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2012년 집권한 시진핑 지도부가 부패척결 드라이브를 걸면서 상하이방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장쩌민 계파에 속했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장, 후진타오 정권의 공안 실권자였던 저우융캉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궈보슝·쉬차이허우 군사위 부주석이 잇따라 숙청됐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1995년11월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장 전 주석은 중국 개혁·개방을 완성시킨 지도자로 평가받지만 톈안먼 사태 당시의 처신, 집권 시절 파룬궁 탄압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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